돌고 돌아 결국 홍명보, 그런데 문제는… [이슈크래커]

입력 2024-07-0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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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울산 HD 감독. (뉴시스)

한국 축구를 이끌 새 사령탑이 등장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7일 한국 축구 A대표팀 차기 감독으로 홍명보 감독이 내정됐다고 발표했습니다. 2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하고 무려 5개월 만에 새 감독을 맞이하게 된 겁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 시절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주역입니다. 지도자로선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쓴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평가받죠.

2013∼2014년 대표팀을 이끌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선 바 있는데요. 당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후 10년 만에 대표팀 사령탑으로 복귀하게 됐는데요. 쓰라린 경험은 북중미 월드컵에 도전하는 과정에서는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축구 팬들의 여론은 싸늘합니다. 일단 홍 감독은 K리그1 울산 HD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축협의 국가대표축구단 운영규정 제12조 2항은 '협회는 감독으로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라 울산은 홍 감독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요.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인 격이 된 겁니다.

줄곧 거론되던 축협의 '프로세스' 논란도 또다시 불거졌습니다. 홍 감독의 내정 소식이 전해진 직후 곳곳에서 '감독 선임 절차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는데요. 홍 감독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축협의 졸속 행정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겁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선임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축협, 돌고 돌아 홍명보 선택한 이유는?…8개 항목 강조

축협은 7일 홍명보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내정한 데 이어 8일 공식 브리핑을 열고 선임을 공식 발표한 배경과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이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빌드업 등 전술적 측면 △원팀을 만드는 리더십 △연령별 대표팀과 연속성 △감독으로서 성과 △현재 촉박한 대표팀 일정 △대표팀 지도 경험 △외국 지도자의 철학을 입힐 시간적 여유의 부족 △외국 지도자의 국내 체류 문제 등 8개의 선임 사유를 설명했는데요.

우선 이 이사는 "협회가 추구하는 게임 모델을 고려했을 때 홍 감독의 경기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울산에서 홍명보 감독은 지난해 K리그 기회 창출 1위, 득점 1위, 압박 강도 1위, 활동량 10위를 기록했다"면서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팀 아르헨티나는 활동량에서 하위그룹이었다. 이는 한국 축구에 교훈을 준다"고 홍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홍 감독이 A대표팀은 물론 23세 이하(U23) 대표팀, 20세 이하(U20) 대표팀을 이끈 경험, 협회 전무이사로 행정에 대해 폭넓은 시야를 가졌다는 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는 설명입니다.

이 이사는 "홍 감독이 추구하는 리더십도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홍 감독은 그동안 '원팀, 원 스피릿, 원 골'을 강조했는데, 현재 대표팀에 가장 필요한 사항"이라면서 "한국 축구가 유지해야 할 원팀 정신을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앞서 2명의 외국인 감독(벤투, 클린스만)을 경험하면서 우리 대표팀에는 자유로움 속 기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죠.

축협은 홍 감독을 비롯한 국내 지도자들과 함께 외국인 지도자들도 신임 감독 후보로 뒀습니다. 이 이사는 지난주 유럽으로 출국해 거스 포옛 전 그리스 대표팀 감독, 다비드 바그너 전 노리치 시티 감독과 미팅하고 돌아왔는데요. 홍 감독이 적임자라는 판단 아래 그의 자택을 찾아가 간곡히 설득했고, 결국 그를 선임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이사는 "당장 9월에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이 시작된다. 이때까지 외국인 감독이 선수를 파악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최종 후보에 오른 외국인 지도자들 모두 유럽 빅리그 경험이 있고 자신들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다는 것도 존중한다. 그러나 홍 감독과 비교해 더 큰 성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 자신들의 철학을 한국 대표팀에 제대로 입히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죠.

경질당한 클린스만 감독은 주로 해외에 거주하면서 '근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이 이사는 "외국인 지도자들의 국내 체류 시간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유럽에서 만난 후보 1명은 체류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1명은 이 부분이 까다로웠다"면서 "국내 체류에 대한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울산 HD 서포터즈 '처용전사'가 8일 공식 채널을 통해 성명을 냈다. (출처='처용전사' 공식 인스타그램)

"K리그 팬들, 받아들일 수 없을 것"…축협 향한 불신만 더 키웠다

축협의 브리핑 이후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골자는 축협의 브리핑 내용이 모두 자승자박이라는 건데요. 협회가 거론한 촉박한 일정, 시간적 여유의 부족은 한없이 늦어진 선임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입니다.

외국인 감독 선임에 방점을 두던 축협 면담 이후에야 외국인 후보와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다가 부족한 협상력을 방증하는 셈이라는 비판도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울산을 포함한 K리그 팬들의 반발이 거셉니다.

울산은 현재 K리그1에서 김천 상무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21경기를 치른 울산은 11승 6승 무패(승점 39)로 선두 김천 상무(승점 40)에 단 1점 뒤처진 2위에 랭크됐습니다. 목표는 당연히 리그 우승이죠.

리그 후반기인 3라운드 로빈(모든 팀이 한 번씩 돌아가며 대결하는 것)을 앞두고 현재 K리그1은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데요. 1위 김천과 2위 울산뿐 아니라 3위 포항 스틸러스, 4위 강원 FC까지 4팀 사이의 승점 차이는 단 1점씩밖에 나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의 승부로 승점이 3점씩 오갈 수 있는 만큼, 네 팀의 순위도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갑작스러운 사령탑 이탈은 악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리그 우승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감독을 빼앗기게 생긴 울산 팬들이 분노한 건 당연한 일이었죠. 울산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성명을 내고 "팬들에게 큰 상처를 준 'K리그 감독 돌려막기'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처용전사는 "대한축구협회의 비극적 선택의 결말은 실패임이 자명"할 것이라고 꼬집으면서 "결과를 거둔다 해도 그건 협회 공이 아닌 울산 HD를 포함한 K리그 팬들의 일방적 희생의 대가"라고 못박았죠.

처용전사는 10일 울산-광주FC전에서 대대적인 시위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태입니다.

축협 부회장 출신의 이영표 해설위원도 솔직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해설위원은 8일 K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K리그 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결정"이라며 "이런 결정이 과연 대표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상당히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습니다.

▲박주호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이 홍명보 감독이 한국 A대표팀 지휘봉을 잡는다는 소식에 당황하고 있다. (출처=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

진짜 문제는 또 불거진 '절차 논란'…홍명보, 시작도 전에 어깨 무겁다

돌고 돌아 결국 '홍명보 카드'를 선택한 축협에는 의심의 눈초리도 쏟아졌습니다.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의 주먹구구식 선임 과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피어오르는 모양샌데요.

이임생 이사는 브리핑에서 이 같은 의혹을 차단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나의 얕은 지식과 경험을 비난해도 좋다. 하지만 선임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 (정몽규) 회장님이 내게 모든 권한을 주셨기에 투명한 과정에서 스스로 결정했다"고 주장했죠.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또 다른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지난 5개월간 정해성 감독을 위원장으로 하는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서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참여해온 박주호의 유튜브 영상으로, '전력강화위 패싱 논란'에 불이 붙은 겁니다.

같은 날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에 공개된 '국가대표 감독 선임과정, 모두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박주호는 그간 후보로 거론된 감독들에 대해 선임이 불발된 이유 등 상세한 비화를 전했는데요. 녹화 도중 홍 감독의 선임 소식이 전해졌고, 박주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박주호는 후벵 아모림(스포르팅 CP), 제시 마치(캐나다), 그리고 바스코 세아브라(FA)를 전력강화위에 감독 후보로 추천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그러나 본인 외에는 거의 후보 추천을 하지 않았고, 일부 위원만 한두 명 정도 추천했다는 설명이었죠.

박주호는 "외국 감독을 설명할 때는 '이건 안 좋고', '저건 안 좋고'라고 말했지만, 국내 감독은 '무조건 다 좋다'고 답했다"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박주호가 의견을 냈을 때 "'그게 아니야. 주호야, 넌 지도자를 못해봐서'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죠.

박주호는 지난 5개월간 약 20차례 회의에 참석했다는데요. 홍 감독 선임에 대해선 "정말 몰랐다"고 놀라며 "홍명보 감독으로 내부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을) 언급하는 분들이 계속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인터뷰로 계속 안 하신다고 말했기에 아닐 줄 알았다. 다른 대안이 있을 줄 알았다"고 의아해했습니다.

실로 홍 감독은 차기 대표팀 감독설을 강하게 부인해왔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고, 최근까지도 축협의 감독 선임 과정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꾸준히 거절 의사를 나타내왔죠. 지난달 30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나서도 "내 입장은 같으니 팬들께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했습니다.

박주호는 "정해성 위원장, 이임생 이사는 유럽에 왜 갔는지 모르겠다"며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흘러갔고, 이래서 됐다는 정도는 말을 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는데요. 박주호의 말대로라면 전력강화위에서 제대로 된 소통이 오갔는지 의문입니다. 클린스만 전 감독 때도 비판이 쏟아진 축협의 '프로세스' 논란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불거진 거죠.

축협은 비밀유지서약을 위반한 박주호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박 위원의 폭로 내용은 일부 근거가 없는 주장이거나 외국인 감독을 원했던 자신의 시각에서 왜곡되게 현실을 인식한 결과라고 반박하기도 했는데요. 박주호가 자신의 영리 목적으로 운영하는 개인 유튜브를 통해 폭로한 점도 문제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협회 내부에서 흐른다는 전언입니다. 그러나 축협에 대한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홍 감독의 공식 입장과 세부적인 계약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연봉을 외국인 지도자 수준으로 크게 올렸고, 유럽 출신 코치가 2명 합류합니다. 임기도 2년 뒤 북중미 월드컵을 넘어 이듬해 아시안컵까지 보장받았습니다.

무엇보다 홍 감독이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데엔 한국 축구에 대한 책임감,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명예회복 욕구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인데요. 당시 그는 스스로 '실패했다'고 규정하며 불명예 사퇴한 바 있죠.

감독 선임은 일단락됐습니다. 그러나 석연찮은 절차, 납득하기 어려운 선임 배경 등 의문이 숱합니다.

여기에 이번 선임 절차 논란과는 별개로, 클린스만 전 감독 체제 아래 겪은 선수단 내홍 사태 등 혼란을 수습하고 팀을 하나로 모으는 게 당장의 과제입니다. 2026 북중미월드컵 3차 예선 첫 경기까지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요. 첫발을 떼기도 전이지만, 홍 감독의 어깨는 이미 무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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