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 교도소에서 보낼 수도”
테라 권도형 피해액 450억 달러
2009년 폰지 사기 주범도 한국계 미국인
파생금융상품 ‘마진콜’ 사태로 월가를 뒤흔들었던 한국계 미국인 투자가에 대해 미국 뉴욕법원 배심원단이 유죄평결을 내렸다. 이번 사태가 앞서 벌어진 코인ㆍ폰지사기 사건 등과 얽혀 한국계에 대한 경계령으로 이어질지 우려된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진행된 빌 황(한국명 황성국) 아케고스캐피털매니지먼트 설립자의 사기 혐의 재판에서 12명의 배심원단이 사기와 공갈 등 11개 혐의 가운데 10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황 씨와 함께 기소된 패트릭 해리건 아케고스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사기와 공갈 등 3개 혐의가 유죄 평결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21년 3월 국제 금융계를 흔든 마진콜 사태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아케고스는 파생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와 차액거래(CFD) 계약을 통해 보유 자산의 5배가 넘는 500억 달러 상당을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아케고스가 자금을 빌려 투자한 주식이 급락하자, 증거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 ‘마진콜’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일부 금융회사의 손실액은 총 100억 달러(약 13조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당국은 집계했다.
스위스 대표은행 크레디트스위스도 마진콜 사태에 휘말려 막대한 손실을 본 끝에 결국 지난해 경쟁사인 UBS에 인수되며 160년 넘는 역사를 마감했다.
미국 검찰은 2022년 황 씨 등을 기소하면서 “금융회사를 속여 거액을 차입한 뒤 이를 자신들이 보유 중인 주식에 대한 파생상품에 투자해 주가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황 씨는 고등학생 시절이던 198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대다. UCLA와 카네기멜런대 MBA를 거쳐 현대증권 뉴욕 법인에도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거물 투자자 줄리언 로버트슨의 눈에 들면서 월가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한국계로서 이례적이었지만, 그만큼 몰락도 충격적이었다. NYT는 “한국계 미국인 황 씨가 남은 삶을 교도소에서 보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보다 앞서 가상화폐 시장에서 대규모 피해를 불러온 테라ㆍ루나 사태의 핵심 피의자 권도형도 한국계 투자사기 피의자다. 그는 40억 달러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한국과 미국 검찰에 기소돼 있다.
그를 구금 중인 몬테네그로 법원은 5월 권 씨의 한국행을 무효로 하고 공소를 유지 중이다.
지난달에는 권 씨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44억7000만 달러 규모의 환수금과 벌금 납부에 합의했다는 로이터 보도도 나왔다.
1991년생인 권 씨는 대원외고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싱가포르에 본사가 있는 테라폼랩스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다. 그가 개발한 가상화폐 테라와 루나는 2022년 5월에 붕괴하면서 손해액이 무려 450억 달러에 달했다.
1000억 원이 넘는 폰지 사기에도 한국계 미국인이 주요 피의자였다. 2009년 한국계 미국인 2명이 다단계 금융사기를 벌인 혐의로 SEC에 의해 제소됐다. 캘리포니아주 덴빌에 사는 손 모ㆍ정 모 씨는 한국과 대만 투자자 500여 명을 상대로 8000만 달러(약 1100억 원) 규모의 금융사기를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SEC가 낸 고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환거래에 투자할 경우 연평균 36%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