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반송은 안 되나요?

입력 2024-07-17 05:00수정 2024-07-1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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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친하게 지내던 국회 보좌진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는 “다 좀 치워버렸으면 좋겠다”며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의원회관’이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인 게 아닌가. 의원회관은 국회의원 집무실이 있는 건물인데,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선물용 난(蘭)이 1층을 점령하고 있었다. 꽃집 사진을 잘못 보낸 게 아닐까 의심하던 찰나, 그는 내게 “두 달 가까이 이런 상태로 방치됐다”고 하소연했다.

매 임기 국회가 새롭게 개원하면 의원회관으로 ‘당선 축하 난’이 배달된다. 얼마 전 조국 대표가 “거부권을 오남용하는 대통령의 축하 난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공개적으로 거절한, 바로 그 난이다. 한 의원실 당 4개만 온다고 쳐도 총 300명의 국회의원이 있으니 올해 1000 개가 넘는 난이 여의도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비록 찾아가는 이 한 명 없어 통행에 방해만 되는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말이다.

그래도 상심하기엔 이르다. 만약 본인이 보낸 축하 화환이 의원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길 원한다면 꽃 종류를 바꿔보자. 옛 문인과 화가들은 난초를 ‘덕을 갖춘 선비’에 빗대 사군자(四君子)로 칭하며 회화의 소재로 삼았다. 고성과 싸움이 오가는 국회에 선비의 절개가 웬 말인지! 상임위원장이 앞장서 인신공격성 조롱을 하거나 고압적인 의사진행을 하고,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라”는 말엔 “공부는 내가 더 잘했을 것”이란 유치한 응수가 오가는 곳이다. 자신의 퇴거 명령에 불응한 동료의원을 형사고발하려는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차라리 수다나 오만이란 꽃말을 가진 금어초나 금잔화를 보내보는 건 어떨지.

또 가만 보면 갈 길 잃은 난은 묘하게 그 주인을 닮았다. 외교·안보·산업 등 사회 각층에서 ‘엘리트’ 소리를 들은 유능한 인재들이 국회로 모여들었지만, 높은 정쟁의 벽에 가로막혀 제자리를 못 찾고 있으니 말이다. 22대 국회 개원 두 달이 되도록 파행 혹은 일방통행을 거듭하는 국회 상황에 “1급수에서 4급수로 들어온 것 같다”는 초선 의원들의 푸념도 심심찮게 들린다. 소수정당으로 전락한 여당의 한 의원은 소신껏 발의한 법안이 힘의 논리에 밀려 폐기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쯤되면 국회 입성이 과연 ‘축하’ 받을 일인지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여전히 회관으론 난이 배달된다. “저기 혹시, 반송은 안 되나요?” 누군가는 택배기사를 붙잡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소통이 단절된 국회, ‘한 때’ 엘리트였던 국민의 대리자를 마주한 대다수 국민의 반송 욕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회 의원회관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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