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전세사기로 발생한 범죄 피해금액이 2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제 경찰청이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수사결과 자료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약 2년간 전세사기 피해액 규모가 2조2836억 원으로 집계됐다. 피해자 1만4907명이 소송 중이다.
이번에 파악된 피해액은 검찰 송치 사건 기준이다. 피해자 중에는 수사·재판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곧바로 정부에 피해 구제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인정한 피해자(1만8125명, 6월 기준)가 경찰 집계보다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약 5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10명 중 7명(73.8%)이 2030세대 청년층이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들이 사기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어서 더 안타깝다.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피해자만 해도 10명이 넘는다.
사회 안전망을 위협하는 암덩어리가 커진 것은 역대 정부의 연이은 실책 탓이 크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정책 오류가 남발됐다. 정부는 서민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2008년부터 ‘전세대출’ 명목의 금융을 공급했고 그 규모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분별하게 커졌다.
금융기관은 공적 기관 보증을 담보로 사적 계약인 전세에 대출금을 내줬다. 은행 창구 담당자는 목돈을 챙기게 되는 집주인에 대한 신용평가를 할 이유가 없었고, 이 모순은 결국 대규모의 전세금 반환 사고로 이어졌다. 전세사기극은 그 일환일 뿐이다. 선심성 전세대출·보증 정책은 부동산 광풍, 갭투기도 야기했다. 아무도 제동을 못 건 포퓰리즘 폭주 때문에 온 나라가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또 다른 실책도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020년 도입된 임대차 2법은 임대료와 임대기간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전세시장의 불길을 크게 키웠다. 무자본 갭투자가 활개를 치고, 전세 사기범들이 더 놀기 좋은 환경이 됐다. 시장의 실패라는 잣대로 ‘빌라왕’, ‘건축왕’ 사태를 보는 것은 착각이다. 차라리 정부의 실패로 간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전세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떼어먹어 명단이 공개된 악성 임대인 127명 중 67명이 여전히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재산세·취득세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임대사업자 등록 말소 전제조건인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역시 정부의 실패에 속할 것이다.
이제라도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최소 수조 원을 도시주택기금에서 빼 ‘선 구제, 후 회수’하자는 민주당 발상은 터무니없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길로 가자는 것 아닌가. 피해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면서 전세제 허점도 메우는 다각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의 보증료율을 현실화·차별화하고 전세 관련 보증제도를 통합·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여기서부터 실마리를 잡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