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DJ)의 3남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DJ 사저를 100억 원에 매각했다는 보도가 어제 나왔다. 사저 소유권을 이달 초 박모 씨 등 3명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거액의 상속세 문제로 세무서 독촉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매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동교동 사저는 DJ 정치 인생이 아로새겨진 집이다. DJ는 1961년 사저에 입주한 뒤 미국 망명과 영국 외유 및 2년여간의 일산 생활을 빼고는 2009년 8월 타계할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군사독재 시절 55차례 가택연금도 여기서 겪었다. 동교동 사저가 대한민국 민주화 자취를 오롯이 담은 역사적 기념탑에 가까운 이유다. 동교동에서 말년을 보낸 고(故) 이희호 여사도 2019년 별세에 앞서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한다. 만약 지자체나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보상금의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며, 나머지 3분의 2는 김홍일·홍업·홍걸에게 균등하게 나눈다”고 유언했다.
이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은 매각을 택했다. DJ 아들마저 상속세 부담에 두 손을 든 셈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7월 민주당 복당 후 2억6000만 원 상당의 코인 거래 사실이 드러나자 DJ 사저 상속에 따른 17억 원의 상속세를 충당하려 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국회의원 금배지까지 단 DJ 아들조차 상속세 부담에 그리 힘겨워했다면 서울 혹은 수도권 아파트 1채를 가진 탓에 팔자에 없는 상속세 걱정을 하게 된 일반인 심정은 어떨지 한 번 따져볼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경제 성장과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 25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상속세의 세율과 면세범위를 조정하고 자녀 공제액도 기존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대폭 확대해 중산층 가정의 부담을 덜어드릴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지난주 내놓은 상속세 감면안에 힘을 실은 언급이다. 하지만 허망한 감마저 없지 않다. 상속세 감면을 골자로 한 2024년 세법개정안 관철을 위해서는 거대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민주당은 “초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지 않나.
정부와 여당은 차라리 민주당 복안을 물을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전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은 요즘 감세론을 터부시하지 않고 있다. 이 대표부터 실용적 접근을 강조한다. 당 일각에서 상속세 공제액을 늘리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상속 자산을 처분하는 시점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자산소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부상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은 그러나 정부안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라며 안면을 바꾼다. ‘동작 그만’이 되고 마는 절망적 그림이다.
정치 현실이 이렇다면 우회로를 뚫어야 한다. DJ 아들마저 상속세 부담 앞에서 항복을 선언할 정도라면 야당 사람들도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손사래를 치기는 어렵다. 정부와 여당이 야당의 진짜 생각을 묻고, 이를 토대로 대결이 아니라 대화로 실타래를 풀 필요가 있다. 협상과 절충이 가능하다면 그쪽으로 달려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