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의 대장정이 마무리됐습니다.
12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프랑스 파리 인근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진행된 폐막식을 끝으로 대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17일간 이어진 여정이었는데요. 이번 대회에선 메달과 함께 각종 기록이 쏟아지면서 기쁨과 의미를 더했습니다.
사실 대회 초반까지만 해도 이처럼 고무적인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설정한 목표치는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단체 구기 종목이 대거 탈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면서 재미도 한층 반감됐죠.
태극전사들은 우려를 비웃듯 연이어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폐회식 당일까지 메달 행진을 이어가면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를 획득했는데요. 종합 순위 8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대회를 마쳤습니다.
선수들은 달콤한 휴식을 취하다가 4년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다시 켜질 올림픽 성화를 기다리게 됩니다.
다만 잡음이 이어질 곳도 있습니다. 안세영(삼성생명)의 작심 발언으로 파문이 인 배드민턴인데요. 대회 폐막과 함께 안세영도 입을 열었고,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단체의 조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번 대회에서 거둔 값진 성과와 함께 폐막 이후 이어질 논란을 살펴봤습니다.
올림픽 폐회식은 8만여 명의 관중이 모인 스타디움에서 샹송 '파리의 하늘 아래' 공연으로 시작했습니다. 파리 튈르리 정원에서 17일간 성화를 밝히던 열기구 모양의 성화대의 불이 사그라들고, 랜턴에 담긴 작은 성화 불씨를 스타디움으로 옮기는 퍼포먼스가 펼쳐져 눈길을 사로잡았죠.
스타드 드 프랑스 스타디움에선 대회 참가국 기수와 선수들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입장했습니다. 이때 한국 선수단은 태권도 남자 58㎏급 금메달리스트 박태준(경희대)과 한국 여자 복싱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복싱 여자 54㎏급(동메달)의 임애지(화순군청)가 공동기수를 맡았습니다.
이어 '올림픽의 꽃' 마라톤 시상식이 열렸는데요. 198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초대 근대 올림픽부터 폐회식에서 진행된 마라톤 메달리스트 시상식은 이번 파리 대회에선 최초로 여자 마라톤 시상식만 단독으로 이뤄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시판 하산(네덜란드), 티지스트 아세파(에티오피아), 헬렌 오비리(케냐)에게 각각 금·은·동메달을 걸어줬죠.
대회 폐회 선언 후에는 다음 하계올림픽 개최지인 LA시에 올림픽기가 전달됐는데요. 이 과정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할리우드 톱배우 톰 크루즈가 스타디움 지붕에서 무대 위로 내려온 뒤 미국의 체조 영웅 시몬 바일스로부터 올림픽기를 건네받고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나간 건데요. 이후 그가 순식간에 미국으로 이동해 LA 현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산악자전거(MTB) 미국 국가대표 케이트 코트니에게 올림픽기를 전달하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영화 '미션 임파서블'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펼쳐졌죠.
이번 대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 이후 가장 성대한 규모로 치러진 올림픽입니다. 주요 외신도 프랑스가 이번 대회를 지구촌 축제로 부활시켰다고 호평했는데요. 로이터 통신은 정국 혼란과 테러 우려 등 모든 어려움에 맞서 파리올림픽이 성공을 거뒀으며, 에펠탑과 앵발리드 등 세계적 명소 사이에 임시 경기장을 세워 예산 낭비를 막고 누구에게나 열린 야외무대를 만들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대회를 성황리에 마친 한국 선수단에도 박수가 나옵니다.
사실 대회 초반까지만 해도 전망은 밝지 않았습니다. 축구, 배구, 농구 등 단체 구기 종목이 출전권조차 따지 못하면서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8년 만의 '최소 규모 선수'인 144명이 출전했죠. 선수가 적은 만큼 목표치도 보수적으로 설정했습니다. 당초 대한체육회는 이번 대회 목표를 '금메달 5개·종합 순위 15위 이내'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다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한국은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에 이어 역대 올림픽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을 썼죠. 2008년 베이징 때는 은메달 11개, 동메달 8개를 추가해 7위, 2012년 런던에서는 은메달과 동메달 모두 9개씩 보태 5위에 올랐습니다.
전체 메달 수로 보면 총 32개의 메달을 수확하면서 서울 대회 33개(금 12, 은 10, 동 11)에 이은 공동 2위(2008년 베이징·32개) 기록을 썼습니다.
최대 성과를 낸 종목은 단연 양궁입니다. 전통적인 '효자 종목' 양궁이지만, 이번 대회는 조금 달랐는데요. 여자 대표팀 멤버 임시현(한국체대)과 남수현(순천시청), 전훈영(인천시청) 모두 올림픽 첫 출전에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해 '역대 최약체'라는 우려가 나온 겁니다.
이는 섣부른 걱정이었습니다. 여자 대표팀은 10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했고, 남자 대표팀도 3연패를 일궜습니다. 특히 김우진(청주시청)과 임시현은 혼성, 남녀 개인전까지 제패하면서 양궁 3관왕에 올랐죠. 5개의 양궁 전 종목을 한국이 싹쓸이한 겁니다.
사격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깜짝 메달'이 쏟아졌는데요. 애초 금메달 1개 정도를 목표로 했지만,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를 획득해 2012년 런던(금 3, 은 2)을 넘어 역대 최고 성적을 냈습니다.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에서 박하준(KT)-금지현(경기도청)이 목에 건 은메달을 시작으로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우승해 한국의 하계 올림픽 통산 100번째 금메달, 역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16세 313일)의 기록을 세운 반효진(대구체고), 여자 25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양지인(한국체대), 남자 25m 속사권총에서 은메달을 따낸 조영재(국군체육부대) 등 낭보가 쏟아졌습니다.
여기에 2021년 도쿄 대회 성적을 견인한 펜싱의 저력은 종주국 프랑스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 오상욱(대전광역시청)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2관왕에 올랐으며 그를 비롯한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 박상원(대전광역시청), 도경동(대구광역시청)이 함께 한 단체전은 64년 만의 올림픽 사브르 단체전 3연패 기록까지 썼죠. 윤지수와 전하영(이상 서울시청), 최세빈(전남도청), 전은혜(인천광역시 중구청)가 함께한 여자 사브르도 단체전에서 도쿄 대회의 동메달을 뛰어넘는 은메달로 역대 최고 성적을 냈습니다.
여기에 태권도는 종주국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습니다. 남자 58㎏급의 박태준(경희대), 여자 57㎏급의 김유진(울산광역시체육회)이 잇달아 금메달을 수확하면서 도쿄 대회의 충격적인 '노메달' 설움을 씻어냈죠.
이 밖에 배드민턴, 탁구, 유도, 여자 복싱 등에서도 고르게 메달을 따냈습니다. 여자 근대5종 동메달을 따낸 성승민(한국체대)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이 종목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까지 안았는데요.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은퇴 이후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돼 온 역도에서 은메달을 수확한 박혜정(고양시청)은 한국 신기록까지 세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선 Z세대의 패기가 돋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메달리스트 44명의 평균 연령은 25.1세인데요.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4명이 2000년 이후 태어난 Z세대입니다. 단체전 포함 금메달리스트 16명 중 10명이 2000년대생이죠.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선수들은 '2028 LA올림픽'에선 갈고닦은 실력, 체력 등에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4년 뒤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죠. 장재근 진천선수촌장도 "세대교체가 잘 된 것 같다. 앞으로 더 성장해 한국 스포츠를 이끌어 나갈 선수가 많다"고 평가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물론, 우리 선수들 모두가 최선을 다하며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이 국민에게 큰 용기와 감동을 줬다"며 "도전을 멈추지 마시라. 여러분이 이끌어갈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를 국민과 함께 힘차게 응원하겠다. 팀 코리아 파이팅!"이라고 격려했죠.
대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됐지만, 한 가지 논란은 본격적으로(?) 물살을 탈 것으로 보입니다.
안세영은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 대한배드민턴협회(이하 배드민턴협회)의 선수 부상 관리와 훈련 지원, 의사결정 체계 및 대회 출전 등과 관련한 문제점을 폭로하고 나섰습니다. 이어 최근 인터뷰에선 "(선수들이) 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으로도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많이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11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는데요. 구체적인 입장은 올림픽 이후 밝히겠다고 예고했던 만큼 폐막일에 맞춰 이번 입장이 보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세영은 현재 국가대표 선수의 개인 후원 및 실업 선수의 연봉·계약금 관련 규정 관련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배드민턴협회 국가대표 운영 지침에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훈련 및 대회 참가 시 협회가 지정한 경기복 및 경기 용품을 사용하고 협회 요청 시 홍보에 적극 협조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개인 후원 계약에 대해선 '배드민턴 용품사 및 본 협회 후원사와 동종업종에 대한 개인 후원 계약은 제한된다'고 나와 있죠.
또 '개인 후원 계약 기간에 올림픽 및 아시아경기대회 등 대한체육회에서 주관해 파견하는 종합경기대회에 참가할 경우 대한체육회의 홍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요. 선수가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개인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고, 협회나 대한체육회 차원의 후원사를 우선하게 되는 겁니다.
안세영은 배드민턴 실업 선수들이 적용받는 계약금‧연봉 상한제도 지적했습니다. 굵직한 대회를 제패하며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안세영이지만, 실력에 비례하는 계약금과 연봉을 받진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한국실업배드민턴연맹이 신인 선수의 계약 기간과 계약금‧연봉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고등학교 졸업 선수의 입단 첫해 연봉은 최고 5000만 원을 넘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3년 차까지는 이전 연봉보다 7% 이상 인상할 수도 없고, 계약금 역시 1억 원을 넘길 수 없죠.
안세영은 "차별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면서 "모든 선수를 다 똑같이 대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배드민턴계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첫 3년 연봉의 한도를 정해주지 않으면 거품이 너무 많이 껴서 실업팀들이 선수단 유지를 못 할 수 있다"며 "시장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보니 안세영 선수처럼 수십 년에 한 번씩 나오는 특별한 선수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체부는 12일 배드민턴협회 등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전격 착수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선수단 본진이 귀국하는 13일 이후께 감사원·국민권익위원회 등 출신 인사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꾸려 이 문제를 들여다볼 방침이고요. 배드민턴협회도 진상조사위원회를 곧 조직해 파악에 나설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