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어제 미국 경제지 포브스의 ‘2024 세계 2000대 기업 명단’을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간 새로 진입한 우리나라 기업 비중이 전체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등재된 한국 기업은 61개였다. 2014년 명단에 없다가 새로 이름을 올린 기업은 이 중 16개로 26.2%였다.
같은 기간 2000대 기업 중 33.8%인 676개가 신규 진입했다. 중국(59.3%), 인도(42.3%), 미국(37.5%) 순으로 신규 진입률이 높았다. 신규 진입률이 높다는 것은 기업 생태계의 신진대사가 활발하다는 뜻이다. 2000대 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미국(621개)이다. 중국(280개), 일본(181개)이 뒤를 잇는다. 한국은 인도, 영국에 이어 6위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등재 기업 수가 2011년부터 사실상 정체된 것부터 그렇다. 대부분 기업이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있다. 상위 500위로 추리면 국가·지역 분류에 ‘South Korea’가 명시된 기업은 9개(14.7%)에 불과하다.
눈길을 더하는 것은 기업 수익성을 나타내는 순이익이다. 한국 기업의 평균 순이익은 10억6000만 달러로 주요 10개국 중 가장 낮다. 전체 평균(22억5000만 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순이익 창출 능력이 이래서야 어찌 신규 투자를 하고 미래 경쟁에 대비하겠나. 기업 경쟁력 기반에 금이 단단히 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 국적의 글로벌 기업이 역동적으로 늘지 않는 것은 포브스 명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들이 세상이 좁다 하고 맘껏 뛸 공간이 없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최근 통계청은 직업 없고, 취업 준비도 없이 ‘그냥 쉬었다’는 젊은이(15~29세)가 7월 기준 44만3000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작년 동월보다 4만2000명 늘어 역대 최대치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들이 역동적 성장을 하지 못하니 그냥 쉬는 젊은이들이 급증하는 것이다. 대학 졸업식장에서 땅에 드러눕는 ‘탕핑족’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을 돕겠다는 수사를 입에 달고 다닌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3월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기업가가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현실의 바람은 각박하다. 국가 발전의 주역인 기업들은 민간 경제를 들볶는 것을 업으로 아는 정치, 관치의 틈바구니에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세계 최악의 약탈적 상속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훌쩍 넘는 법인세, 기업 경영진을 엄벌하지 못해 안달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보라. ‘갈라파고스 규제’인 대기업집단·동일인지정 제도는 또 어떤가. 생산력과 직결되는 노동개혁 또한 진척이 없다.
국가 장래가 걱정되고 젊은이 일자리가 눈에 밟힌다면 립서비스만 남발하는 구태는 접어야 한다. 여야가 때마침 20일 국회 연구단체 ‘한국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모임’ 창립총회를 열었다. 만시지탄이다. 기업들의 힘을 빼고 사기를 꺾는 세제, 법제 문제만 조금씩 털어내기 시작해도 국민은 큰 박수로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