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곤은 업력이 짧은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비교적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최근에는 시가총액(시총)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으나, 여전히 20위권에서는 강자로 평가받고 있다.
가상자산 변방으로 인식된 인도에서 시작된 폴리곤은 2017년 비트코인이 무려 2만 달러 가까이 치솟는 역사적인 '최초의 불장' 이후 '매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한해 한해 성장을 하던 폴리곤은 2021년 600억 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으며 생태계 확장에 가속도를 붙였다.
폴리곤의 성장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것은 이더리움이다. 당시 '생태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던 블록체인 시장에서 이더리움은 매력적인 존재였다. 제3의 개입 없이 개인 간 거래를 가능하게 한 스마트 컨트랙트의 도입으로 블록체인은 2세대를 맞이했다. 여기에 뛰어난 보안성과 탈중앙화를 자랑하며 영역을 확장했다.
그런 이더리움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높은 거래 수수료와 느린 처리 속도였다. 경매 방식의 수수료 처리 방식으로 보내는 가상자산보다 떼가는 금액이 많을 정도였다.
폴리곤의 전성기는 이때부터 비트코인·이더리움과 궤를 같이했다.
2022년에도 호황을 맞이한 폴리곤은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메이플스토리를 개발한 넥슨이 2021년부터 폴리곤 블록체인에 게임 개발을 들어갔고, 국내에서는 네오위즈를 비롯해 대홍기획 등이 참여해 '웹 3 게임', '플랫폼과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개발을 이어나갔다.
글로벌로 지형을 넓혀보면 다양한 업계에서 폴리곤 기반 웹 3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했다. 스타벅스는 폴리곤과 협업 하에 미국에서 NFT 멤버십 '스타벅스 오디세이'를 지난해 12월 출시한 바 있다. 그 외 나이키도 웹 3 플랫폼을 폴리곤 기반으로 구축하겠다고 발표했고, 디즈니는 협력할 혁신 기업인 '디즈니 액셀러레이터'로 폴리곤을 선정했다. 미국 최대 투자 은행 JP모건도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기반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폴리곤을 활용했다.
이에 번스타인은 "폴리곤은 수백만 이용자를 유입시킨 웹 3 진입로가 됐다"며 "사업개발 역량을 꽃 피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더리움에 의존하는 사이드체인인 만큼 장기적인 솔루션은 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레이어2 롤업은 기존 체인에 종속된 사이드체인과는 달리 별도의 보안 체계를 운영한다. 만일 이더리움의 네트워크상에서 악의적인 거래가 있을 때, 사이드체인으로는 이를 발견할 수 없다. 이를 보완한 레이어2 롤업에는 대표적으로 옵티미스틱 방식과 zk 방식이 있다.
'옵티미스틱(낙관적인) 롤업'은 이름처럼 모든 거래가 사실이라고 가정한 뒤, 진위 확인을 위한 거래 기록을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전송한다. 이때 의심 가는 거래가 있을 때 검증자가 거래를 모두 재실행한다. 후술할 영 지식증명 기반의 롤업에 비해 개발이 쉽다는 특징이 있으나 송금 과정에서 일주일 가까이 시간이 걸린다.
'zk롤업'은 거래의 진위 확인에 '영 지식증명'(Zero Knowledge)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영 지식증명이란 거래 상대방에게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해당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말한다. 영 지식증명 기술을 통해 이미 진위를 확인한 뒤 그 기록을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보내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이터의 양이 훨씬 적다.
폴리곤은 앞선 두 가지 방식 중 zk를 택했다. 이로 인해 폴리곤랩스는 롤업 기술, 체인개발키트(CDK), zk롤업을 토대로 이종 가상자산을 주고받은 크로스 체인 등 다양한 기술 기반 솔루션을 제공하는 인프라 회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 선택이 폴리곤에 있어서는 악재가 됐다. zk롤업은 옵티미스틱 롤업에 비해 기술적으로 발전했지만, 개발이 더 어렵다. 폴리곤이 기술회사 헤르메즈를 인수하고 zk롤업에 매진하는 동안 '옵티미스틱' 진영에 강력한 경쟁자가 부상한 것이다.
바로 2023년 나온 아비트럼과 옵티미즘이다. 디스프레드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롤업 프로젝트 중 총 예치금(TVL) 1위는 아비트럼(45%)이 차지했다. 2위가 폴리곤(21%), 3위가 옵티미즘(17%), 4위는 베이스(10%)로 나왔다. 사실상 옵티미스틱 진영이 전체 롤업 TVL 시장의 70%를 차지한 것이다.
또한, 지지부진한 개발이 폴리곤의 발목을 잡았다. 넥슨은 개발을 진행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새로운 메인넷 아발란체를 택했다. 업계에서는 폴리곤의 실제 기술력이 미흡한 데다 앱토스, 수이 등 여러 메인넷들이 출시되면서 위기감을 키운 것으로 봤다.
롤업 기술과 메인넷에서 모두 위협을 받은 폴리곤은 이후 기축 통화인 매틱의 가격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올 초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이후엔 오름세를 보였으나 이후 계속해서 떨어졌다.
여기에는 폴리곤 토크노믹스의 한계와 맞물려 있었다. 폴리곤의 합의 알고리즘 방식은 권위증명이다. 소수의 감시자만이 폴리곤 체인의 거래를 감시하고 승인한다. 보상받을 주체가 적다 보니 쓰임새가 사실상 없었다.
기축통화인 매틱의 쓰임새라고는 수수료가 전부다. 보상도 취약하다. 만일 특정 프로젝트에서 자신들의 가상자산을 맡겨 검증에 참여하는 스테이킹에 참여할 경우 보상으로 가상자산인 폴리곤을 지급하는 정도다.
폴리곤이 프로젝트 활성화를 위해 인수 등으로 기금을 많이 지출한 것도 하방 요인을 키웠다. 폴리곤은 현재 100억 개의 발행량 중 93억 개 가까이 유통되고 있다. 유통량의 이면에는 프로젝트팀에서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 가상자산의 비율이 중요한데, 쟁글 리서치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의 기축 통화를 소진한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해당 물량이 많고 락업이 확정된 비율이 높을수록 가치 하락이 발생하지 않지만, 폴리곤랩스는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사실상 금고에 돈이 빈 상태다.
이로 인해 가격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10위권에 있던 시가총액은 어느새 49억5000만 달러(약 6조6300억 원)로, 24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반전의 실마리가 있었다. 폴리곤이 지난해 토크노믹스까지 개편한 것이다. 폴리곤랩스는 토크노믹스 2.0을 발표하면서 △유동성 통합 △스테이킹 보상 강화 △자본 확보에 나섰다. 초기에는 유상증자와 같은 인플레이션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소식에 많은 이탈이 있었지만, 포모가 꺼지면서 안정됐다.
그러면서 새로운 개발 성과가 나오며 다시 상승했다. 폴리곤랩스가 다음 달 4일 메인넷 업그레이드와 함께 네이티브 토큰인 매틱을 '폴'(POL)로 전환을 발표하자 20~21일 사이 5% 이상 상승하더니 22일께에는 15% 가까이 급등했다.
다만 풀려있는 물량을 비롯해 토큰 가치 활성화에는 아직도 물음표다. 폴리곤은 지난해부터 발표한 청사진 계획에도 올 초 상승장 때 신고가를 경신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메사리 리서치와 쟁글 리서치 등 주요 가상자산 분석 업체들은 "이번 개편을 통해 폴리곤랩스가 10년간 활동할 자본력을 확보한 것은 분명하다"며 "인플레이션율을 2%로 잡은 것도 합리적인 수치이며 당분간 매도압력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다만 최근 들어 온체인 지표 개선에도 폴리곤이 주력했던 게임 분야의 약세가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