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기능 강화에 리스크관리본부 역할 커져
리스크검증팀 신설…시스템 고도화에도 나서
최근 한국수출입은행의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 수출기업 지원이라는 기존 역할을 확대해 경제외교를 뒷받침하고 공급망 안보를 지원하기 위한 ‘국제협력 금융기관’으로 도약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도 마쳤다. 올해 2월 ‘한국수출은행법(수은법) 개정안’을 통해 법정자본금을 15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늘렸다.
외연 확장 국면 속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스크 관리다. 수은의 업무영역 확장을 내실있게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고도화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동훈 수은 부행장(리스크관리본부장)이 그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이 부행장은 1998년 수은에 리스크관리부가 신설된 이듬해 막내 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리스크관리본부로 격상된 지 10년 만에 리스크관리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컴백했다.
이 부행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7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수은 정책금융의 전략적 운용 방안을 안건으로 논의했다”면서 “수은의 기능 강화와 관련해 정부차원의 논의가 이뤄질 정도로 수은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관리 본부의 역할 역시 한층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2021년 자금시장단장, 2023년 기획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수은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 이 부행장. 국제협력 금융기관으로의 발판이 된 법정자본금 한도 증액도 그가 기획부장 시절 추진했던 사안이다.
이 부행장은 “대정부, 국회, 언론 등으로 쌓은 대관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법정자본금 한도 증액 관련 수은법 개정안 발의와 자본금 출자를 위해 발 벗고 뛰었다”면서 “법 개정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자본금 보강을 통해 주력 산업에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자금시장단장 시절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35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본드 발행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는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로 시장불안이 커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코로나19 회복력 순위에서 한국이 상위 국가에 랭크되는 등 한국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여전히 높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국내 자금시장에 이벤트가 발생하기는 했으나 국가 신용도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채권시장에서 수은이 갖고 있는 신뢰도를 믿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20년물 달러채 발행에 나선 바 있는 이 부행장은 35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본드 발행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외화차입 최대 발행기관인 수은이 경색된 자금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다. 이 과정에서 윤희성 은행장 등 경영진이 보내준 신뢰 역시 큰 힘이 됐다고 부연했다.
그의 판단은 선제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조달을 이끌었으며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 수은에서 리스크 관리라는 중책을 맡게 된 이 부행장은 어느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수은이 큰 도약을 내실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금 관리 △ 경영 관리 △리스크 관리 등 관리 인프라 구축이 절대적”이라며 “무엇보다 은행의 외연이 확장되는 국면에서 리스크 관리라는 탄탄한 받침대가 있어야 확장의 속도와 폭이 한층 더 빨라지고 커질 수 있다”고 피력했다.
상황은 나쁘지 않다. 현재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자산건전성 지표 등 리스크지표가 리스크관리본부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수은의 BIS비율 15.4%를 기록했는데, 이는 국책은행 중 최고 수준이다.
수은의 리스크 관리는 통상적인 상업은행과는 다르다. 이 부행장은 “상업은행들이 이익과 리스크 사이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추구한다면, 국책은행은 정책금융과 리스크관리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또 소매금융을 전혀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국책은행들과도 다르다. 건당 여신규모가 큰 기업금융, 그 중에서 해외진출 관련 금융지원을 주로 취급하다 보니 건당 여신규모가 조 단위에 이르기도 한다. 심지어 담보 없이 신용으로만 이뤄지는 여신 비중이 크다. 올해 6월 기준 수은의 신용여신 비율은 89%로 시중은행의 두 배 수준이다.
그는 “상업은행의 경우 건당 여신 규모가 크지 않은 다수 대출건을 일으켜 통계적으로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지만, 수은의 경우 대출액이 크면서 중장기인 데다 신용여신의 비중까지 높아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클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수은 건전성 지표, 국책은행 중 최고
직원들과 소통 강화…마라톤처럼 경영지표 지속적으로 살필 것
수은의 특성상 외화여신이 전체 여신의 약 77%(6월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큰 차이다. 이 부행장은 “△신용리스크 △환리스크 △유동성리스크 등에 동시 노출될 수 있는 만큼 수은은 상담부터 승인, 사후관리에 이르는 모든 여신 지원 과정에서 제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층적 리스크 관리를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또 “시스템에 의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사전에 정해진 절차와 시스템을 중시하면서 한 개인의 판단이 아닌 관련부서간의 치열한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향후 리스크 관리 영역이 확대되는 만큼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현재 구축된 리스크관리시스템의 운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부행장 직속의 ‘리스크검증팀’을 신설했다.
리스크 관리 시스템 고도화에도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이 부행장은 “거의 20년 만에 신용리스크 관리체계를 개편하고 있으며, BIS비율 스트레스테스트 시스템 고도화에도 나서고 있다 ”면서 “금융감독원의 ‘건전한 운영리스크 관리원칙(PSMOR)’ 도입 및 시행에 맞춰 운영리스크 관리체계 고도화 작업 역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가 리스크 관리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통’을 통한 조직관리다. 이 부행장이 내부 인력 관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다. 특히 최근에는 조직규모가 커지면서 늘어난 MZ세대 직원들과의 소통도 강화했다.
취미로 마라톤을 시작한 그는 리스크 업무를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부행장은 “마라톤이 무작정 뛰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페이스, 심박수 및 심박수 영역, 케이던스(발이 지면에 닿는 횟수), 최대 산소섭취량 등 필요한 보조지표가 10개가 넘는데 오랫동안 잘 뛰기 위해서는 자신의 러닝 수준과 보조지표 등을 활용해 성과통계에 관한 수치를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리스크 역시 마라톤 처럼 관련 보조지표를 꾸준히 살피고 관리해 나가는 작업”이라면서 “앞으로 5년, 10년 뒤에도 수은의 경영건전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리스크 관리에 나서는 것이 나의 소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