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佛 집권당 리더십 공백 오래갈듯
‘정치인의 이름을 딴 정당의 호소력은 어디까지일까?’ 정당이 활동하는 나라의 정치문화와 상황에 따라 상이한 답이 나올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 좌파 여성 정치인인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주도하는 정당 ‘자라바겐크네히트연대’(Bündnis Sahra Wagenknecht, BSW)가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올 초 창당된 이 정당은 지난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6.17%의 지지를 얻어 창당 5개월 만에 4위의 정당이 됐다. 또 이달 1일 구동독의 튀링겐과 작센 주 지방선거에서 BSW는 각각 15.6%, 11.7%의 지지로 3위를 차지했다(제2공영방송 ZDF 출구조사 기준). 이 정당은 우크라이나 신규 지원을 반대하고 있어 독일은 물론 유럽의 정치에도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BSW는 기존 주류정당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보수와 진보정당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여러 정책을 취합했다. 발발한 지 2년 7개월이 다 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지원을 반대하며 푸틴과 평화협상을 요구한다. 불법 이민 강력 단속을 강조하지만 복지확대, 부자 증세를 주장한다. 기존 정당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진보적 보수 정당 혹은 보수적 진보정당인 셈이다.
창당자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1969년생으로 동독에서 성장했다. 40세가 되던 2009년 좌파연합(Die Linke) 당원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2015~2019년에는 좌파연합의 원내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으로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며 차세대 좌파연합의 지도자가 됐다. 좌파연합은 구동독 시절 공산당인 통합사회당의 후신으로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된 후에도 동독지역에서는 10% 내외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2013년 반이민과 반이슬람, 반유럽통합을 내세운 극우정당 독일대안당(AfD)이 동독 지역에서도 좌파연합보다 지지도에서 훨씬 앞섰다. 이런 틈새를 노리고 그는 주류정당을 비판하며 새로운 정당을 세웠다. BSW 창당으로 좌파연합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졌다. 그는 9명의 다른 연합 의원들과 탈퇴했다. 좌파연합은 하원에서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의원 37명을 겨우 보유했었는데 9명이 나가면서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이달 1일 두 개의 주선거에서 독일대안당은 튀링겐주에서 33.1%, 작센주에서 30.5%로 제1당, 2당이 됐다. 지난달 23일 서부 졸링겐 시에서 시리아 난민 신청자가 흉기를 휘둘러 3명이 숨졌다. 용의자는 난민 신청에서 탈락해 강제추방 대상자였으나 집행기관이 제때 집행하지 못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다. 주로 좌파연합과 녹색당, 사회민주당(사민당)의 유권자들이 AfD와 BSW 지지로 돌아섰다.
AfD는 최고의 선거 결과를 얻어냈지만 과반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기에 연립정부(연정)를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중도우파의 기민당·기사당, 사민당 등은 물론이고 BSW조차도 AfD와의 연정을 거부한다. 따라서 앞으로 지리한 연정 구성 협상이 계속될 것이다.
튀링겐주의 경우 녹색당이 의회 진입에 필요한 지지율 5%를 얻지 못해, 2위를 기록한 중도우파 기민당(23.6%)과 사민당(6.0%)의 표를 합쳐도 과반에 턱없이 부족하다. 작센주도 기존의 기민당·사민당·녹색당 연정 역시 과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BSW가 연정 구성을 가능하게 할 열쇠를 쥔 ‘킹 메이커’다.
튀링겐주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연정 구성은 기민당·BSW·좌파연합뿐이다. 좌파연합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BSW보다 더 강력하게 반대한다. 작센주에서도 기민당·BSW에 사민당이나 녹색당, 혹은 좌파연합과 같은 한 정당이 더 참여하면 연정이 가능하다.
기민당이나 사민당, 녹색당과 같은 기성 정당들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려고 하기에 BSW와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 기민당은 이민정책에서 어느 정도 접점을 제외하고 자라바겐크네히트연대와 거의 모든 정책에서 입장 차이가 매우 크다. 집권을 하려면 킹메이커 BSW의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해야 한다.
튀링겐과 작센주에서 극우 독일대안당이 제1당, 제2당이 된 것은 정치적 격변이다.
AfD와 BSW의 표를 합치면 튀링겐주에서 48.7%, 작센주에서 42.2%가 된다. 즉 반(反)기성정당이 옛 동독지역에서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얻은 게 큰 변화다. 경제침체 속에서 난민이 급증하고 물가가 급등하면서 옛 동독 유권자들의 불만이 폭증했다.
이번 정치지형의 급변은 연방정부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독일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우크라이나 지원국이다. 동독지역의 유권자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며 강경한 이민정책을 표방한 정당에 절반에 가까운 표를 줬다.
6월 10일 설문조사업체 ‘포르슝스그루페발렌(Forschungsgruppe Wahlen)’ 조사결과에 따르면,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아직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는 시민들이 41%로 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보다 13%포인트 높다. 전쟁(지원) 피로감이 점차 독일에서 높아지고 있지만 2차대전의 역사적 업보 때문에 독일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쉽사리 축소할 수 없을 듯하다.
반면에 제한적인 이민정책은 기성정당도 상당히 동의하기에 앞으로 이 이슈는 계속해서 독일에서 공감대를 얻을 듯하다. 지난달 31일에 독일 정부는 28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신청자를 추방했다. 이들은 독일로 와서 난민신청 중에 범죄를 저질러 형이 확정됐다. 이번 강제 송환은 흉기 테러 후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대내외에 보여줬다.
독일정부는 이어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법에 따라 신속한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독일과 프랑스는 70년 넘게 유럽통합을 주도해왔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 7월 총선에서 마크롱이 이끄는 정당이 과반을 얻지 못했고 아직까지 총리를 선출하지 못했다. 의회에서 교착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마크롱 대통령은 임기가 2년 8개월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레임덕에 빠졌다. 이번 지방선거로 독일의 숄츠 총리 리더십도 더 약화했다. 이래저래 유럽의 리더십 공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