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수요 불구 현실적 여건에 발목 잡혀
9월 11일. 벤처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받더라도 창업주 의결권을 보호해 안정적인 경영을 펼치도록 하는 복수의결권주식 제도가 시행된 지 300일이다. 그러나 까다로운 요건과 세금 부담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생각보다 많은 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8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7일 복수의결권주식 제도가 시행된 이후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하거나 결정한 기업은 2곳에 그친다.
복수의결권주식 제도 도입을 앞두고 벤처기업협회가 벤처기업 291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70.8%가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응답 기업 중 시행 즉시 도입하겠다는 기업은 9개사(4.4%)였고, 향후 1년 이내로 계획을 잡은 기업은 27개사(13.1%) 수준이었다. 62개 기업(30.1%)은 3년 이내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제도 시행 1년이 다가오는 시점에 복수의결권주식 제도는 2호 기업을 탄생시키는 데 그쳤다. 높은 수요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여건이 발목을 잡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요건을 충족한 기업들은 과세 부담을 주요 고려사항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현금이 부족한 스타트업, 벤처기업 특성상 기업들은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을 위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창업주가 가진 기존 주식을 활용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에 대해 정부는 과세이연 특례를 주기로 했다. 다만 내년부터 적용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이 발행 시점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많은 기업은 발행 요건 충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도 도입 전 벤처기업협회 설문에서도 109개 기업(31.1%)이 ‘발행요건 충족’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은 바 있다. 당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기업은 206곳 중 155곳으로 75.2%를 차지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도입될 당시에도 업계에서는 요건이 너무 과하고, 적용받을 수 있는 대상 자체가 많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요건을 현실화하는 것이 실효성 확보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