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JTBC ‘최강야구’에서 자신의 제자들을 자랑하는 김문호(이제는 전 코치)에게 내뱉은 이대호의 일침인데요. 이 문장만으로도 대졸 선수에 대한 이미지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데요.
‘고졸 선발자보다 기량이 낮은 선수’, ‘고졸 이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대학에 진학한 선수’, ‘같은 나잇대 선수들과 비교할 때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라고 말이죠.
11일 프로야구(KBO) 한해 신인 농사를 책임지는 큰 행사, ‘2025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서울 롯데호텔에서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됐습니다. 이번 드래프트에는 고교 졸업 예정자 840명, 대학 졸업 예정자 286명, 얼리 드래프트(2학년) 신청자 56명, 트라이아웃 참가자 15명을 포함해 총 1197명이 참가했는데요.
1라운드에 지명받을 것으로 유력시되는 선수들의 윤곽은 이미 나온 상황이었죠. 역시나 그 예상은 비켜나지 않았습니다. 전체 1순위의 영예는 정현우(덕수고)가 안았는데요. 정현우는 올해 고교 대회 16경기서 8승 평균자책점 0.75, 48과 3분의 1이닝 동안 70탈삼진에 12개의 사사구를 기록하는 등 완성형 좌완 투수로 평가받고 있죠.
2순위는 정우주(전주고)에게 돌아갔는데요. 정현우와 함께 1순위 유력 지명자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선수죠. 정우주는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 나온 모든 투수 중 스피드와 구위가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무대에 부모님과 함께 올라 행복한 시간을 가진 1라운드 지명 순서 이후 2~11라운드까지 숨 가쁘게 진행이 됐는데요. 약 1200명의 신청자 중 프로 데뷔 기회는 단 110명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중 얼리드래프트를 포함한 대졸 선수들은 단 16명이었죠.
11.1% vs 4.6%
정말 바늘구멍이라는 프로 데뷔 기회에서도 대졸 선수들은 고졸(11.1%)보다 4.6%란 더 작은 구멍을 뚫어야 가능했는데요.
언제부터인가 한국 야구에서 대학 진학은 고교 3학년 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이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당연히 대학교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죠. 과거엔 설사 프로에 우선 지명되더라도 대학교 진학 후 데뷔하는 것이 당연했는데요. 그때만 하더라도 야구 좀 하는 선수들은 대학을 가서 국가대표를 지낸 뒤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것을 로망으로 삼았습니다.
휘문고 졸업반 당시 연고지 고졸 우선지명으로 LG 트윈스 선택을 받았지만, 고려대학교로 진학한 박용택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실제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프로에 입단한 이승엽(삼성 라이온즈·현 두산 베어스 감독)이 특이 케이스로 언급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는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프로로 가는 평균 연령이 어려지는 데다, 자유계약선수(FA)가 활성화되고 해외 진출도 많아지면서 빨리 프로로 진출하는 것이 유리해졌습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면서 대졸자들의 신인 드래프트 지명은 더 어려워졌죠. 솔직히 말해 대졸 의무지명이 아니었다면 그 숫자는 더 줄어들 위기입니다. ‘2020 드래프트’부터 KBO는 대학야구 활성화 규정에 따라 구단은 1명 이상의 대졸자를 지명해야 하는데요. 얼리드래프트 지명자는 이 숫자에서 제외돼 더 어렵죠.
올해 대졸 지명자 16명 중 첫 번째 이름은 4라운드에서 불렸는데요. 하위 지명자들의 1군 데뷔 기회가 희박한 만큼 이번 대졸 지명자 중에 단 한 명만이 1군 조기 데뷔를 그나마 노려볼만한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대졸 선수들은 하위 지명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특히 맨 마지막인 10~11라운드에만 6명이 몰려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프로 데뷔의 문턱을 밟은 선수들이 됐는데요. 이름을 불리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죠. 화제성이 높은 인기 예능 현재 JTBC ‘최강야구 시즌3’에 출연하고 있는 ‘영건’ 대졸 선수들 또한 단 한 명도 이름을 불리지 못했는데요. 올해는 문교원(인하대·얼리), 이용헌(성균관대), 고대한(중앙대), 유태웅(동의대), 윤상혁(중앙대)이 드래프트에 도전했지만 모두 탈락해 충격을 안겼습니다. 지난해 4명이 드래프트 지명에 성공하며 ‘취업 야구’로 불렸던 명성에 금이 가는 성적이었죠.
물론 인기 예능에 출연한다고 해서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대학 경기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다만 스카우트들에게 한 번 더 인식될 수 있는 선수임은 분명하죠. 하지만 이들조차 그 기회를 얻지 못할 만큼 쉽지 않은 도전임을 느끼게 됩니다.
어찌 보면 지난해 ‘2024 KBO 신인 드래프트’ 당시 대졸(얼리 포함) 지명자가 29명이 나온 점이 이례적인데요. ‘2020 드래프트’부터 올해까지 살펴보면 각각 18명, 19명, 16명, 18명, 29명, 16명의 대졸 지명자가 나왔죠. 대부분 20명 아래의 선수들이 뽑힌 것이 일반적입니다.
상위 라운드 지명자라 하더라도 1군 데뷔가 확정인 것이 아닌 만큼, 하위 라운드의 선수들은 프로 1군이라는 꿈의 무대를 위해 부단히 경쟁해야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더 문이 좁은 대졸자와 기타 트라이아웃 선수들은 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대졸 신화’, ‘육성 신화’ 등의 수식어가 붙게 되는데요. 지난해 고졸 외 선수 중에 1군 무대를 밟은 드래프트 지명자는 겨우 정현수(롯데 자이언츠), 황영묵(한화), 손주환(NC 다이노스), 고영우(키움) 정도임을 봐도 알 수 있죠.
그래도 분명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고, 더 오래 묵혀뒀던 장맛이 더 진하다는 말을 믿어보고 싶은데요. 뒤늦은 시작일지라도 ‘신화’가 되는 롤모델이 꼭 등장하기 때문이죠. 다시 도전이라는 출발선에 선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