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독점 당국 관문 넘어야
인텔, 56년 역사상 전례 없는 위기 직면
모바일·AI 등 시대 흐름 간파 못 한 전략적 실패
세계 최대 스마트폰용 칩 제조사인 퀄컴이 최근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인텔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한때 세계 시장을 지배하며 ‘반도체 제왕’으로 불리던 인텔이 인수 대상으로 거론되는 처지로 추락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퀄컴이 인텔에 인수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양사가 실제로 거래를 논의했는지, 구체적인 조건 등이 무엇인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인텔은 전날 기준 시가총액이 약 930억 달러에 달해 매각할 경우 프리미엄 등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최소 1000억 달러(약 133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690억 달러 규모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를 넘어서는 기술업계 사상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이 된다.
다만 이러한 초기 논의가 합의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또 양사가 합의하더라도 거래 규모가 워낙 커서 전 세계 당국의 반독점법 심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퀄컴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회사 자산과 일부 사업을 타사에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텔이 인수 대상에 거론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고 WSJ는 강조했다. 인텔은 수십 년간 ‘반도체 대명사’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반도체 회사로 군림했다. 인텔은 1970년대 후반부터 개인용컴퓨터(PC)와 서버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지배했다. 모든 전자제품에 인텔의 반도체가 들어있다는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은 인텔의 과거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케 한다.
그랬던 인텔이 M&A 먹잇감으로 전락한 것은 설립 이후 56년 만에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WSJ는 짚었다. 인텔은 줄어드는 PC 수요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모바일 칩 설계 분야는 영국 암(Arm)에, 인공지능(AI) 칩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는 엔비디아에 주도권을 내줬다. 인텔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CPU 부문에서도 경쟁사인 AMD에 점점 따라잡히고 있다.
올해 2분기에는 매출이 전년보다 1% 줄고 16억1000만 달러(약 2조1509억 원) 순손실을 내면서 어닝쇼크를 일으켰다. 인텔 주가는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0년 초 수준에서 70% 가까이 추락했다. 급기야 인텔은 100억 달러 비용 절감을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을 최근 내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위기가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 전략적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중심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데 이어 최근 AI 칩 시장에서마저 뒤처지면서 스스로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2017년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지분을 확보할 기회를 걷어찬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인텔은 당시 생성형 AI가 출시돼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최종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젤로 지노 CFRA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지난 2~3년 동안 AI로의 전환이 인텔에 큰 타격을 줬다”며 “인텔은 적절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생산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8나노(18A) 공정에 주목하고 있다. 스테이시 라스곤 번스타인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인텔의 미래는 내년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칩 제조 기술의 성패에 달렸다”며 “기술 지배력을 회복하면 수익률을 개선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