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법에서는 20개 품목까지 안전상비의약품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 해열진통제 5종, 소화제 4종, 종합감기약 2종, 소염진통제(파스) 2종의 총 13개 품목만 2012년부터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다.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할 때는 시행 6개월 후 중간 점검을 거치고 시행 1년 후에는 품목을 재조정하기로 했지만, 12년째 요지부동이다.
그사이 ‘타이레놀정 160㎎’과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 2종이 국내 생산을 중단하면서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해열진통제는 오히려 5종에서 3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어린이가 복용할 수 있는 해열진통제는 2종에 불과하고, 이마저 수급이 불안정해 부모들의 속을 태우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연초부터 시작된 의정갈등으로 의료대란이 빚어지고,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지는 ‘응급실 뺑뺑이’가 속출하면서 안전상비의약품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다섯 차례에 걸쳐 보건복지부에 관련 민원을 제기하고, 올해 7월과 8월 두 달간 대한약사회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어느 곳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상비의약품 도입 10년을 맞아 실시된 조사에서는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어 편리하다’라는 답변이 96.8%, ‘지속적으로 구입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이 95.5%로 나타나 실질적인 편익이 뚜렷했다. 또한 지사제나 화상치료제, 소아용 감기약처럼 갑작스러운 증상에 대처할 수 있는 품목들의 추가를 희망했다.
국민이 안전상비의약품을 유용하게 쓰고 있단 사실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듬해인 2013년 153억 원이던 안전상비약 공급가액은 2022년 537억 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장기화하는 의료대란 속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재조정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의 편익을 최우선 과제라 생각한다면, 전문가 집단도 정부도 더는 논의를 미뤄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