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 양측의 갈등이 이미 치달을 대로 치달은 줄 알았는데요. 또 다른 라운드가 시작된 듯합니다.
앞서 어도어는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고 민 전 대표를 해임했습니다. 대신 김주영 사내이사가 신임 대표로 선임됐죠. 어도어는 "민 전 대표는 대표이사에서는 물러나지만, 어도어 사내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민 전 대표는 불쾌함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이사회의 해임 결정이 "주주간계약과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법한 결정"이라며 프로듀싱 업무를 담당시키겠다는 것도 일방적으로 통보한 내용이라고 주장했죠.
이런 가운데 어도어 소속 그룹 뉴진스는 11일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어도어와 하이브 측에 민 전 대표의 대표직 복귀를 요청해 세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아이돌 그룹이 소속사 내부 분쟁에 직접 뛰어든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가요계 역사를 뜯어봐도 소속 가수가 소속 기업에 '경영 관련 요구'를 공개적으로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데요. 그만큼 뉴진스와 민 전 대표의 신뢰 관계가 두텁다는 겁니다.
다만 뉴진스가 직접 제시한 '최후통첩'은 결국 불발됐습니다. 이에 민 전 대표와 뉴진스, 어도어, 하이브의 갈등은 법정으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죠.
먼저 뉴진스의 최후통첩 관련 상황은 이렇습니다.
뉴진스는 긴급 라이브 방송에서 25일까지 민 전 대표를 복귀시키라고 요구하면서 "그 사람들(하이브 혹은 현 어도어 경영진)이 속한 사회에 같이 순응하거나 동조하거나 따라가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멤버 하니는 하이브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폭로해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외에도 민 전 대표의 해임이라는 중차대한 사항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으며, 멤버들의 의료 기록 등 사적 자료 유출을 막지 못했다는 등 소속사를 향한 비판을 내놨습니다.
폭로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미 여론은 움직였습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고용노동부에 '하이브 내 뉴진스 따돌림 의혹을 규명해달라'는 취지의 민원이 제기되는가 하면, 뉴진스 팬덤 버니즈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김주영 대표와 경영진에게 "뉴진스 멤버들에게 발생한 일련의 사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며 "따돌림 피해 폭로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아티스트를 향한 근거 없는 비장과 루머 유포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민 전 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민 전 대표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세종은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어도어 임시주주총회 소집 및 어도어 사내이사 재선임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세종 측은 "민 전 대표에 대한 대표이사 해임은 주주간계약에 위반되는 것이고 법원의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결정에도 반하는 것"이라며 "11월 2일 전까지 어도어 이사 재선임을 위한 임시주총이 필요한 점, 법원의 가처분 심리기간을 고려해 민 전 대표를 어도어의 이사로 재선임한 다음 대표이사로 선임하라는 취지로 가처분신청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죠.
이후 어도어는 뉴진스 멤버들이 말한 '데드라인'에 맞춰 이사회를 개최했습니다. 25일 오전 열린 이사회에선 민 전 대표를 사내이사로 재선임하기 위한 임시주총을 소집하기로 결의했는데요.
어도어 지분 80%를 보유한 대주주 하이브도 이 제안은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임시주총에서 민 전 대표의 사내이사 임기 연장은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민 전 대표의 사내이사 임기는 11월 1일 끝나죠.
다만 어도어 이사회는 민 전 대표를 대표이사직에 복귀시키는 건 불가하다고 못박았습니다. 사내이사와 프로듀싱은 유지하되 대표이사 복귀는 불가하다는, 절반의 합의안을 제시한 셈인데요.
그러나 민 전 대표는 어도어의 절충안을 곧바로 거부했습니다.
민 전 대표 측은 같은 날 공식 입장을 내고 "이날 오전 어도어 이사회는 민 전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주총 소집을 결의했다"며 "그러나 사내이사 선임은 대주주인 하이브가 결정하는 것이므로 현시점에서 민 전 대표가 사내이사로 재선임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어도어 이사회는 11일 오전 민 전 대표에게 향후 5년간 뉴진스 프로듀싱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면서 "그러나 계약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말만 있었을 뿐 초안에 있던 일방적인 해지권 등 수많은 독소조항을 삭제하는 등 진정성 있는 제안은 전혀 없었다. 절충안 제시라는 표현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강조했죠.
민 전 대표 측은 잘못된 제안으로 임기만 연장되고, 뉴진스의 정상적인 활동을 보장받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했는데요. 이에 "민 전 대표는 대표이사로서의 복귀 의사를 명확히 밝힘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하이브의 진정성을 갖춘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요청한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입장에서도 다시금 민 전 대표의 대표이사 직위 복귀를 강력하게 요구했는데요.
민 전 대표는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선 하이브와의 갈등 사태가 발생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회사 사장이 모회사의 심기를 대놓고 거스른 데 대한 공개 처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요.
하이브와 갈등을 벌이는 게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풋옵션 때문이라는 의혹이 있다는 질문엔 "5월 나를 해임하려 했던 임시주총에 대한 가처분 승소 이후 하이브로부터 '돈을 줄 테니 받고 나가라'는 협상안이 변호사를 통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거절했다"고 부인했습니다.
전날(25일) 한 일간지 기자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하이브가 뉴진스의 성과를 낮춰 써달라는 식으로 언론에 요구했다'는 취지로 제보한 내용에 대해선 "(하이브가) 해당 기자에게 뉴진스 '슈퍼내추럴'(Supernatural)의 일본 판매량을 5만 장이라고 왜곡했다. 기사 작성 다음 날인 7월 18일 일본에서 1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아티스트에게 수여되는 골드 레코드 인증도 받았는데, 어떻게 그 전날 5만 장뿐이었겠나"라고 말했는데요.
특히 민 전 대표는 "이런 건이 한두 개가 아니다"라며 "최근 빌보드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하이브의 홍보(PR) 대행사에서 나에 대한 비방이 가득한 자료를 보내줬는데, 내용이 너무 편향적이고 뭔가 이상해서 사실 확인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 겉으론 프로듀서 5년을 제안했다고 홍보하면서, 뒤로는 해외 매체에까지 비방 자료를 뿌리는 회사를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나"라고 호소했습니다.
민 전 대표는 앞서 일본 매체에 밝힌 '뉴진스의 7년짜리 큰 그림'이 하이브와의 갈등으로 차질이 생겼다며 "하이브가 뉴진스에 대해 벌인 업무방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민 전 대표에 따르면 한국 팬을 위한 깜짝 팬미팅을 진행하던 중 해임됐고, 다음 음반 작업도 중단된 상태라고 하죠.
하이브는 이 같은 내용에 펄쩍 뛰었습니다. 먼저 '돈을 줄 테니 받고 나가라'는 협상안을 제시한 적 없다고 황당함을 표했는데요. 해외 PR 대행사에서 비방 자료를 뿌렸다는 주장에 대해선 "해당 회사는 '민 이사에 대한 자료를 배포한 적이 없고 그런 주장을 한다면 거짓말'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며 "벤저민도 민 이사에게 비방 가득한 자료를 받았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이브 PR 담당자가 뉴진스의 일본 내 성과를 폄하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일본에서만 102만 장이 팔렸다'는 기사 내용이 너무나 큰 사실 왜곡이어서 당시 공개돼 있던 오리콘 차트 데이터로 판매량을 설명한 것"이라며 "해당 기사가 나온 다음 날 일본레코드협회가 골드(10만 장) 인증을 한 사실이 알려졌으나 골드는 '출하량' 기준으로 선정한다"고 부연했습니다.
또 뉴진스의 팬미팅, 음반 작업 중단 역시 하이브의 업무방해가 아닌 민 전 대표의 업무태만과 의사결정 지연 때문이라고 맞받았죠.
가요계 안팎에서는 결국 뉴진스가 하이브와 결별을 택하지 않겠냐는 측이 우세합니다. 이 경우 위약금을 물고 나가거나 전속계약 해지 소송 등 법적 다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뉴진스의 위약금은 45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기에 소송을 통해 탈출을 모색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죠.
소속 연예인이 소속사에 불만 또는 요구사항이 있으면 그 내용을 전달하고, 일정 기간 내에 시정되지 않으면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게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고시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계약서에 나와 있는 절차인데요. 표준계약서 제15조(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에 따르면 기획사가 전속 계약을 위반할 경우 가수가 14일 이내에 시정을 요구하고 시정이 안 되면 계약 해제, 해지 및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진스의 긴급 라이브 방송은 11일 진행됐고, 멤버들이 제시한 '데드라인'은 25일이었습니다. 표준 전속계약상 계약 해지 통보 전 위반 사항 시정을 먼저 요구하는 유예기간인 '14일'과 딱 맞아 떨어지죠. 이에 가요계에서는 뉴진스의 라이브 방송이 사실상 하이브와의 소송을 위해 마련한 '발판'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하이브 내 따돌림을 당했다거나 △민 전 대표의 해임을 언론 보도로 접했고 △멤버들의 개인 의료 기록 유출을 막지 못했으며 △민 전 대표와 외부 업체의 협업 영상을 어도어 측이 삭제했다는 등 뉴진스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주장했던 내용이 법적 근거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소속사 내 따돌림은 규명하기 쉽지 않은 데다가,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대상은 근로자에게 한정됩니다. 뉴진스가 일반 직장인 같은 '근로자'는 아니기에 계약 해지의 사유가 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민 전 대표의 해임이 뉴진스의 전속계약에 중대한 계약 위반 사항으로 인정될 가능성도 작습니다.
통상 아티스트와 소속사 간 계약 기간은 7년입니다. 2022년 8월 데뷔한 뉴진스에게 남은 계약 기간은 약 5년. 뉴진스에 대한 신규 기업 설립자금은 투자를 받더라도, 수천억 원대 위약금까지 부담하면서 투자할 이가 나타날지는 의문입니다. 또 민 전 대표 편에 선 뉴진스를 순조롭게 품고 가는 일은 하이브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일인데요. 이러나저러나 길고 복잡한 절차가 뉴진스와 민 전 대표, 어도어와 하이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