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까지 직업공무원은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다. 1990년 10급(2012년 폐지)과 9급의 초임은 현재 가치로 환산했을 때 각각 115만 원, 90만 원 수준이다. 이 시절 하위직급 공무원들의 유일한 희망은 연금이었다. 1980년대까지 정부는 인건비를 아껴 도로, 철도 등 기반시설에 투자했다. 대신 공무원들에게 ‘후한 연금’을 보장해줬다. 당장은 재정이 빈약하니 저임금을 주되, 노후만큼은 국가가 책임진단 명분이었다. 그렇게 정부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해당 시기에 마땅히 떠안아야 할 인건비 부담을 20~30년 뒤 정부에 떠넘겼다. 그게 공무원연금이다.
낸 돈 대비 연금액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10급 기능직 출신이다. 2012년 폐지된 10급 기능직은 본래 공무원이 아니었다. 학교 등에서 일명 ‘소사’로 고용돼 현재 가치로 50만 원 안팎의 월급으로 착취당했다. 소사는 심부름꾼을 뜻하는 일본어 한자의 한국식 발음으로, 시설관리직을 깎아내리는 말이다. 이들은 1980년대 말 10급 기능직으로 전환됐으나, 공무원 임금 정상화가 추진된 1994년 전까지 일직을 안 서면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의 저임금을 받았다.
현재 공무원연금 적자의 본질은 이 같은 과거 정부의 ‘공무원 착취’에 있다. 애초에 공무원들에게 민간기업 수준의 임금을 줬다면 연금도 불필요했을 거다. 그렇기에 공무원연금 적자가 발생한다고 퇴직 공무원들을 탓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현재 대한민국은 과거 공무원 인건비로 지출됐어야 할 돈으로 만들어진 기반시설을 토대로 수출 강국, 정보기술(IT) 강국이 됐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적자를 재정으로 충당하는 건 일정 부분 당위성을 지닌다.
문제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다. 공무원 임금은 1994년, 2001~2002년, 2006년, 2011년 네 차례 대폭 인상을 거쳤다. 하지만, 2012년 이후 공무원 임금 인상은 정체되고 최저임금은 급격히 오르는 흐름에서 민간기업 임금 대비 공무원 임금수준은 80% 초반까지 떨어졌다. 연금 메리트는 2016년 개혁으로 사라졌다. 2016년 이후 입직한 공무원은 퇴직급여를 합한 실질 본인부담 보험료율이 17.3%로 국민연금 직장가입자(4.5%)의 4배 가까이 되지만, 연금액은 가입기간 평균소득이 같은 직장가입자의 2배가량이다. 오히려 ‘가성비’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2010년대 말부터 6~7급, 9급을 중심으로 공무원 유출(의원면직)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연금을 미끼로 제시하기 어렵다. 재정안정 목적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한창인 상황에 이미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공무원연금을 다시 인상하자는 건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 개혁 이후 다른 공적연금과 함께 구조적 통합이 필요하다.
연금으로 젊고 유능한 공무원들을 붙잡을 수 없다면 방법은 급여 인상만 남는다. 대기업 수준으로 올리잔 게 아니다.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해결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