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환율 예의 주시할 것”
이시바 일본 총리, 추가 금리 인상 부정적…엔저 유발
양국, 수출 위해 통화 약세 선호
한국 등 주변 아시아, 통화 평가절하 경쟁 합류 가능성
이러한 우려는 지난달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달러당 중국 위안화 가치는 지난달 말 16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위안·달러 환율이 7위안 밑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쏟아낸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하면서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인 것이 맞물린 영향이었다. 중국은 올해 ‘5% 안팎’ 경제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각종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부양책에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로 위안화가 지나치게 강세를 보이는 것은 중국 정부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중국은 미·중 갈등 속 첨단 제조업에 초점을 맞추면서 독보적인 가격경쟁력을 토대로 전기자동차와 태양광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 가치가 오르게 된다면 수출 경쟁력은 낮아지게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 금융당국이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동시에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네이선 스와미 씨티은행 아시아·태평양 외환 트레이딩 책임자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중국 당국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대부분 이어져 왔던 위안화 가치 하락 압력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환영할 수는 있다”며 “그러나 추가 가치 상승 속도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인민은행은 8월 초 엔 캐리트레이드 붕괴로 글로벌 외환시장이 요동치자 국영은행들에 달러 매수를 압박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환율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문제는 중국의 적극적인 환율 개입 움직임이 일본의 엔화 가치 약세와 맞물릴 경우 두 나라의 경쟁적인 자국 통화 평가절하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취임 전과 달리 일본은행(BOJ)의 추가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엔화 가치 약세를 유발하기도 했다. 일본 역시 지나친 엔화 강세는 부담이다. 특히 양국 모두 첨단 제조업 제품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맞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
포브스 수석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미국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에 기고한 글에서 “위안화 약세만큼 중국 경제에 순풍을 불어넣을 수 있는 요인도 없다”면서 “서방의 분노를 사지 않는 엔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위안화 절하를 위한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도 중국 외환 당국의 환율 개입 여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맥쿼리 외환전략팀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내년 초 위안·달러 환율이 7.30위안까지 상승(위안화 가치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달러·위안 환율은 6.95위안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과 일본의 자국 통화 가치절하 경쟁이 본격화한다면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국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페섹은 “최근 제조업이 위축된 한국도 원화 약세를 통해 경기 회복을 노릴 수 있다”면서 “싱가포르 역시 내수 흐름이 정체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