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정취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억새밭은 은빛 물결로 출렁이고, 단풍도 울긋불긋한 색깔로 물들어가고 있는데요. 가을비가 그친 주말엔 단풍 구경을 떠나는 이들로 전국 각지의 단풍 명소가 북적일 듯합니다.
디저트 시장도 가을을 놓칠 수 없습니다. 유행이 빠른 디저트 특성상 관련 업계도 새로운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는데요. 달콤한 호박 타르트와 호박 파이, 부드러운 고구마 라떼, 무화과 케이크 등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식음료 상품이 눈길을 끌죠.
그중에서도 유독 많은 시선이 쏠린 게 있습니다. 바로 '밤'인데요.
물론 밤이 새로운 재료는 아닙니다. 매년 가을이면 개인 카페부터 편의점, 마트 등 유통업계, 그리고 호텔까지 밤 관련 상품을 선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다릅니다. 밤 디저트 '열풍'이 불면서 '돈이 있어도 못 사먹는다'는 토로까지 나오는데요.
'밤 디저트' 하면 몽블랑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입니다.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소복하게 덮여 있는 게 특징입니다.
이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게 바로 몽블랑 케이크입니다. 카스텔라나 스펀지 케이크를 자르고, 그 위를 크림으로 덮은 뒤 밤과 꿀 등으로 장식한 디저트인데요. 원래는 흰 생크림이 올라갔지만 밤으로 만든 마롱 크림이 자주 올라가게 되면서 지금의 몽블랑이 탄생했습니다.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밤 크림, 부드러운 식감으로 인기를 끕니다.
밤 조림인 보늬 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배우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도 등장하는 제철 간식(?)인데요. 만드는 방법은 꽤 까다롭습니다. 밤껍질을 까는 데만 반나절이 넘게 소요되죠. 먼저 밤을 뜨거운 물에 담가 불린 뒤 밤 겉껍질을 깝니다. 속껍질이 손상되지 않게 조심히 다뤄야 합니다. 속껍질이 조금이라도 까진 밤들은 조림 과정에서 터질 수 있다고 하는데요. 겉껍질을 깐 뒤에는 밤을 헹구고 다시 물에 재워 떫은맛을 제거해야 하는데, 12시간에서 24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이를 약한 불에서 세 차례 끓여낸 뒤 설탕을 넣어 졸이고, 레드와인 등을 넣어 마무리하면 보늬 밤이 완성됩니다.
보늬 밤 자체에도 풍부한 단맛과 고소함이 있지만, 이를 활용해 또 다른 디저트도 만듭니다. 파이부터 타르트, 빙수, 휘낭시에, 마카롱, 치즈 케이크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보늬 밤 디저트를 맛볼 수 있죠.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등 여러 호텔은 가을 시즌 메뉴로 몽블랑을 선보여 왔습니다. 글로벌 티 음료 전문 브랜드 공차코리아는 지난해 '몽블랑 밀크티', '몽블랑 스무디'를 출시한 바 있는데요. 할리스도 '보늬밤 크림 라떼', '보늬밤 치즈 케이크' 등으로 계절감을 선사했죠.
SPC삼립은 '몽블랑 밤크림 카스테라'. '몽블랑 밤크림 케익' 등 '몽블랑 밤 디저트' 2종을 선보였는데요. 충남 특산물인 '공주밤'을 활용했습니다.
하겐다즈는 시즌 한정 아이스크림 '체스트넛 타르트'를 출시한 바 있습니다. 깊고 진한 크림과 입안 가득 바삭하게 씹히는 타르트 조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제품으로, 아이스크림 전체를 감싸는 달콤한 밤 소스가 특징이었죠.
수많은 밤 관련 간식이 출시됐지만, 올해는 '밤 열풍'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습니다. '넷플릭스가 쏘아 올린 공' 효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인기가 많아 매진 행진이 이어지면서 '살 돈이 있어도 못 구한다'는 토로가 빗발치는 중입니다.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선 패자부활전으로 편의점 미션이 펼쳐졌습니다. 탈락 제한 시간 내에 편의점 상품들로 요리 한 접시를 만들어내야 했는데요. 편의점 하나를 통째로 세트장에 구현해놓으면서 눈길을 끌었죠.
출연자 나폴리 맛피아(본명 권성준)은 전략적으로 디저트 한 접시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대부분 셰프들이 편의점에 있는 자극적인 맛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한국 사람들은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단 게 당기는데, 디저트를 하면 그 자극적인 맛에서 심사위원들을 구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죠.
그는 맛밤, 크림빵, 통밀 비스킷, 초콜릿과 그래놀라 등을 활용해 밤 티라미수를 만들었는데요.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한국 유일 미셸린(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모수 서울의 오너셰프인 안성재는 "편의점 재료가 좋네. 더 먹어야겠다"며 감탄했는데요. 유독 칭찬에 인색했던 그는 "어떻게 이렇게 조화롭게 만들었지?"라며 "이거 호텔에서 몇만 원 하는 디저트 같다"고 극찬해 시청자들의 놀라움을 자아냈죠. 백종원도 "이거 사긴데"라며 환한 미소를 짓고 밤 티라미수를 연신 맛봤습니다.
결국 나폴리 맛피아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 패자부활전에서 생존했습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최종 우승자로도 거듭났는데요. 그가 선보인 많은 요리 중에서도 밤 티라미수에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편의점 상품으로 만들어 재료를 구하기 쉬운 데다가,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완성할 수 있는 특징 때문이었죠. 네티즌 사이 나폴리 맛피아의 밤 티라미수 레시피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통업계도 발 빠르게 나섰습니다. 사실 이 세트장을 구현한 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었는데요. 반사이익은 엄청났습니다. 출연자들이 재료를 구하기 위해 편의점 세트장을 동분서주한 만큼 CU 로고와 상품들이 쉴 새 없이 노출됐고 CU의 화제성도 껑충 뛰어오른 겁니다. CU는 나폴리 맛피아와 손잡고 '밤 티라미수 컵'을 출시했습니다.
8일부터 사전 예약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날 20분 만에 준비 수량 2만 개가 동났습니다. 포켓 CU 예약 판매 사상 최소 시간, 최대 판매 수량입니다.
GS25도 최근 밤맛 디저트가 인기인 점에 착안해 밤 티라미수, 클래식 티라미수, 푸딩 등을 출시합니다. GS25가 선보이는 티라미수 상품은 '흑백요리사' 레시피를 활용하지 않고 넷플릭스 지식재산(IP) 공식 파트너사로서 별도 기획한 상품인데요. 24일부터 구매할 수 있죠.
롯데웰푸드가 충남 부여군과 협업해 선보인 가을 한정판 '부여 알밤 시리즈 9종'은 출시 한 달 만에 완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몽쉘 부여 알밤, 명가 찰떡파이 부여 알밤, 말랑카우 부여 알밤, 크런키 더블크런치바 미니 부여 알밤 등 총 9종의 상품은 출시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를 빚었죠. 해당 시리즈는 3개월 한정 운영될 예정이었으나, 출시 한 달 만에 대다수 제품의 판매가 완료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밤 디저트가 출시되는 지금, 거물(?)까지 참전했습니다. 대전의 대표 빵집 성심당이 밤이 가득 들어간 케이크 '알밤시루'를 출시한 겁니다.
이미 성심당은 과일을 한가득 사용한 과일시루로 유명합니다. 딸기부터 망고, 생귤, 무화과 등 다양한 과일을 시즌마다 선보이는데, 소비자 개개인이 선호하는 과일이 다른 만큼 과일시루 출시 시기를 기다리는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죠. 신선한 과일, 달콤한 생크림, 푹신푹신한 케이크, 이 모든 게 믿기지 않는 저렴한 가격까지 매력을 고루 갖췄다는 평을 받습니다.
15일에 출시된 알밤시루는 가을 한정 메뉴입니다.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밤 크림, 그리고 알밤이 가득 들어간 케이크입니다. 시루 시리즈가 인기가 많은 만큼 1인당 1개만 구매할 수 있는데요. 성심당 케익부띠끄 본점, 롯데점, DCC점 등 매장 세 곳 현장에서만 살 수 있고 예약도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대전 매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케이크라는 건데, 이를 구하러 원정을 떠나는 '빵친자'(빵에 미친 자)들도 적지 않죠.
성심당도 이전부터 밤 관련 디저트를 선보여왔습니다. 롤케이크 중 공주 알밤을 사용한 '몽블랑 롤'도 인기가 좋아 가을이면 성심당을 찾는 이들로 가게 앞이 북적입니다. 이번 가을 '떠알밤'(떠먹는 알밤시루) 등 새로운 상품도 출시돼 전국의 빵돌이·빵순이들을 흥분케 했죠. 더군다나 '흑백요리사'가 쏘아 올린 공으로 성심당엔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당분간 긴 웨이팅 줄은 감안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