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최근 공개된 쿠팡플레이의 'SNL 코리아 시즌6'(이하 'SNL 코리아')에서 불거진 한강의 패러디가 문제가 된 것인데요.
앞서 10일(한국시간) 역대 121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의 이름이 호명된 이후 그의 작품들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죠.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를 휩쓰는가 하면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판매 순위 상위권에 들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도 한강의 저서 대출량이 대폭 상승했고, 서울광장, 청계천 등에선 야외 독서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마련돼 눈길을 끌었는데요.
버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시민들도 눈에 띕니다. 기자도 오늘(21일) 책에 몰두한 시민 옆자리에 앉아 출근했습니다. 시민의 손에 들린 책은 한강의 대표작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라 반가움이 두 배였는데요.
당연히 방송가도 난리(?)가 났습니다. 포니정혁신상 시상식을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공개석상에 나선 한강의 모습을 담기 위한 취재 열기도 뜨거웠고요. KBS는 '작가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앙코르 TV책' 1·2부를 시작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 '특집 사사건건-작가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을 방송한 데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 특집 다큐멘터리 한강'을 긴급 편성했죠. EBS에서도 특집 방송 '문학 기행’, ‘문학 산책'을 특별 편성하면서 한강의 작품 세계를 조명했습니다.
예능계도 이 화제성을 놓치기 싫었나 봅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은 과거 한강의 인터뷰 장면을 패러디해 내보내면서 화제성에 편승하려고 했죠. 그러나 이 장면은 웃음이나 공감을 자아낸 게 아니라 싸늘한 눈초리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게으른 한국 예능의 현주소"라는 등 낯뜨겁다는 비판까지 쇄도하고 있습니다.
한강 열풍에 탑승했다가 비판만 받은 방송은 쿠팡플레이의 'SNL 코리아'입니다.
21일 방송가에 따르면 문제의 장면은 19일 공개된 8회에서 나왔습니다.
뉴스를 패러디하는 코너인 '위크엔드 업데이트'에서는 배우 김아영이 한강의 대역을 맡아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그려졌는데요. 기자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수상을 알리는 연락을 받고는 처음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김아영은 눈을 거의 감은 채 다소 움츠린 자세와 나긋나긋한 말투를 표현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과거 한강이 공개석상에서 보인 모습을 과장해 나타낸 겁니다.
해당 장면은 공개와 동시에 비판을 불렀습니다. 네티즌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외모와 말투를 조롱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뭔가" 등 비판의 목소리를 냈는데요. 특히 "풍자의 대상은 제쳐놓더라도 신선함도, 재미도 없다. 그저 흉내내기일 뿐" 등 지적도 나왔죠.
문제가 된 코너는 또 있었습니다. 이날 '국정감사' 코너에서는 얼마 전 있었던 화제의 국감장이 재현됐습니다. 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가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이었는데요. 배우 지예은은 하니의 무대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등장해 어눌한 말투를 연기했습니다. 하니는 베트남계 호주인으로, 국감에 통역사 없이 참석해 질의에 응한 바 있습니다.
또 중대재해 사고로 총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증인으로 출석한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대외협력실장)이 하니와 사진을 찍는 장면도 패러디됐는데요. 김의성이 정 사장 역할을 맡아 이 장면을 연기했습니다.
이 장면 역시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특히 하니가 인기 아이돌인 만큼, 뉴진스 팬덤에서도 "외국인 인종차별", "하니에게 사과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죠. 하니를 연기한 지예은은 인스타그램 댓글창을 닫았습니다.
다만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코너가 국감이라는 중요한 자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사안의 본질보다 연예인의 화제성에만 이목이 쏠리는 현상을 꼬집었을 뿐, 하니의 어눌한 한국어를 희화화했다고 보긴 어렵다고도 반박했습니다.
'SNL 코리아'는 그간 '성역 없는 풍자'로 이름을 떨쳐 왔습니다. 특히 정치 풍자는 'SNL 코리아'의 장기로 통했죠. 어딘가 엉성한 분장에도 배우들이 입을 떼기만 하면 시청자들은 특정 정치인을 떠올렸고, 배우들이 뱉는 대사로 이내 확신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대통령 선거 전이었던 2021년엔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출연해 화제를 빚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출연 당시 'SNL 코리아'의 코너 '주기자가 간다'에 출연해 "대통령이 되신다면 SNL이 자유롭게 정치 풍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냐"는 질문을 받고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SNL의 권리"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이어 "몇 년 전에 우연히 TV를 보다 보니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나왔는데), 그를 상대로 놀리고 흉을 보는 행사를 하고 있더라. 굉장히 재밌게 봤다"고도 부연했죠.
또 올해 총선을 앞두고선 나경원 당시 국민의힘 후보,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등이 출연했죠. 지난달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출연해 '밸런스 게임'에 나섰습니다.
당 색깔(?)을 가리지 않는 신랄한 풍자, 가감 없는 패러디, 능청스러운 상황극까지 정치 콘텐츠로 인기를 끌던 'SNL 코리아'였지만, 최근 방송을 향한 시선은 사뭇 다릅니다. 단순히 재미가 덜하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게으르다'는 비판까지 확산하고 있는 건데요. 이른바 '우려먹기'라고 하죠. 인기를 끈 특정 주제를 지나치게 희화화한다는 취지입니다.
'SNL 코리아'는 MZ세대에 대한 풍자로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양한 사회초년생 캐릭터, 그런 MZ세대에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기성세대 캐릭터를 그린 건데요. '지나친 과장', '온라인 커뮤니티에나 올라올 법한 MZ세대의 특이 사례를 전반적 특징으로 일반화했다' 등의 비판은 있었지만, 적지 않은 공감을 산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되레 MZ세대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독서 열풍이 불면서 '텍스트 힙' 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젊은 세대 사이 유행 중인 독서 모임을 패러디한 건데요. 독서 모임에 가입한 젊은 시민이 "저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이 구절 자체가 소년이 오고 있다"고 말하자 기자는 "책 내용이 진짜 소년이 이렇게 오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당황합니다. "여성이신데 '우먼 부커상'이 아니라 '맨 부커상'을 받으셨다. 위대하신 것 같다"는 감탄도 기자의 당혹스러움을 자아냈죠.
해당 장면에 젊은 세대는 황당함을 표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에서는 "가상의 MZ세대를 조롱하는 데 여념이 없다", "언제까지 MZ세대를 '버릇없고 무식한 세대' 프레임으로 조롱할 건지 궁금하다", "요즘은 허세로 시작하더라도 책 읽는 게 좋은 현상이라고 호평하는 분위기 아닌가. 시류에 동떨어진 듯" 등 회의적인 반응이 속출했죠.
사실 이는 'SNL 코리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특정 주제나 포맷이 인기를 끌면 유사한 프로그램을 '복사+붙여넣기'하는 건 방송계에선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도 하죠. 수년 전 '미스트롯'으로 시작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최근엔 신선함은 물론 재미까지 놓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화제성'으로만 승부를 보면서 되레 대중의 피로감을 자아낸 프로그램도 다수죠.
최근 예능계는 그야말로 '이혼의 시대'입니다. 이혼한 스타들의 일상을 다루는 프로그램부터 가상 이혼을 체험해보는 포맷까지 다양한데요. 방송에서 자신의 이혼을 개그 요소로 승화하면서 거침없는 웃음을 주는 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TV조선 '이제 혼자다'는 다시 혼자가 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면서 눈길을 끕니다. 출연진에서부터 화제성을 노렸다는 제작진의 포부(?)가 느껴지는데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박지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최동석은 파일럿에 이어 정규 편성된 방송에 고정 출연을 확정해 최근까지 얼굴을 비쳤고요. 전남편 이동건이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자 조윤희는 '이제 혼자다'에 합류했습니다. 최근 회차에서는 세 번의 이혼을 경험한 이상아가 출연해 첫 번째 남편이었던 코미디언 김한석을 저격해 눈길을 끌었고, 우지원은 결혼 생활 중 가정폭력 혐의로 입건된 당시의 상황을 해명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최동석은 박지윤과의 이혼 과정이 낱낱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방송에 출연하며 화제를 빚었습니다. 이들은 2009년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뒀지만, 지난해 이혼 소송을 시작하면서 양육권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죠. 최동석은 SNS로 꾸준히 박지윤을 겨냥하는 듯한 글을 게재해왔고, 방송에서도 쌍방 상간 소송이라는 충격적인 이혼 과정에 대한 심경을 전해왔습니다.
방송 초반 화제성엔 이러한 상황이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대중의 피로도는 높아졌습니다. 이들의 사생활은 언론에 꾸준히 노출됐고, 특히 한 연예 매체를 통해 공개된 녹취록과 메시지 내역이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대중 사이 '이제 그만 좀 하라'는 토로까지 나온 겁니다. 결국 최동석은 '이제 혼자다' 자진 하차를 결정했고, 제작진도 그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상아는 고정 출연이 아닌 게스트로 출연한 것으로 전해졌죠.
그러나 대중의 피로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최연소 아이돌 부부'라는 타이틀로 21살에 결혼했지만 5년 만에 이혼한 라붐 출신 율희가 새롭게 방송에 합류하는데요. 전남편인 최민환이 세 아이의 양육권을 가지게 된 사정을 설명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일방적인 폭로와 저격으로 얼룩진 지난 행태가 또 '붙여넣기' 된다면, "방송 제작에 별 고민 없이 게으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죠.
한 방송 관계자는 "이혼 예능은 출연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을 수 있어 논란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면서도 "이혼을 언급하는 화자가 당사자라는 점에서 화제성이 폭발적이라 주제가 식상해도,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주제인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