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아프리카TV가 SOOP(숲)으로 사명을 변경한 지도 일주일가량 지났습니다.
주식회사 숲은 15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날 정오부터 아프리카TV에서 새롭게 개편한 플랫폼 숲이 서비스에 들어갔다고 밝혔는데요. 주식회사 숲은 지난해 말 플랫폼 리브랜딩 계획을 밝히고 올해 3월 회사명을 아프리카TV에서 현재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4월에는 코스닥 시장 종목명도 'SOOP'으로 바꿨죠.
이 명칭에는 모든 구성 요소를 아우르는 '숲'처럼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콘텐츠로 소통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로고에는 스트리머와 이용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넓은 세계와 연결돼 소통한다는 뜻을 담았죠.
플랫폼 이름이 바뀐 건 2006년 W플레이어에서 아프리카TV가 된 지 18년 만인데요. 아프리카TV만의 고유명사도 일부 개편됩니다. 기존 아프리카TV 인터넷 방송인을 부르던 명칭 'BJ'는 '스트리머'로, 방송 공간인 '방송국'은 '채널'로 말이죠. 다만 유료 후원 화폐 '별풍선'은 그대로 유지합니다.
숲의 이번 개편은 이미지 쇄신 목표에서 비롯됐습니다. 'TV'라는 단어가 내포한 기존 방송의 개념을 탈피, '소통'을 중심으로 한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인데요. 사실 사명이나 명칭, 사용자경험(UX)과 인터페이스(UI) 변화보다 '리브랜딩'에 강력한 한 방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퀄리티, '콘텐츠의 질'이죠.
숲의 이번 개편은 파격적입니다. "고작 사명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에서 아프리카TV는 굳건한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먹방부터 음악, 게임, 스포츠 등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졌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문화로도 이름을 날렸는데요. 사명뿐 아니라 방송인을 일컫는 'BJ' 용어까지 높은 인지도를 자랑했습니다. 외국에서는 인터넷 방송인을 크리에이터나 스트리머 등 단어로 통칭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 방송인=BJ'라는 인식도 있죠. 그간 아프리카TV가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에서 떨친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스트리머 시장도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대도서관, 감스트, 쯔양 등 지상파로 진출한 인터넷 방송인들이 처음으로 방송을 시작한 곳도 아프리카TV였는데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6일 아프리카TV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TV의 지난해 매출액은 3476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4% 증가했습니다. 영업이익은 903억 원으로 전년 대비 9.6% 늘었죠. 지난해 별풍선 매출 상위 10명의 BJ에게만 총 656억 원을 지급해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현재 숲에서 활동하는 스트리머들은 3만 명가량으로 추산됩니다. 스트리머로 데뷔하기 위한 학원도, 이들을 전담으로 관리하는 기획사도 있는데요. 그냥 막연하게 "나도 방송이나 해봐?" 하면서 쉽게 성공을 거머쥘 수 없는 시장이라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리머는 숲의 주요 수입원이자 리스크입니다. 숲은 시청자가 스트리머에게 별풍선을 줄 때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데요. 수수료는 숲과 스트리머가 등급에 따라 4대 6(일반) 또는 3대 7(베스트) 또는 2대 8(파트너)의 비율로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2018년 1531억 원이었던 스트리머 분배금은 △2019년 1957억 원 △2020년 2515억 원 △2021년 3463억 원으로 지속해서 늘었습니다. 숲이 챙긴 수수료도 계속 증가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스트리머들의 범죄 행각이 터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도 누적됐는데요.
BJ 세야(본명 박대세)는 지난해 조직폭력배 출신 BJ 김강패(본명 김재왕)에게 마약류를 건네받은 뒤 여러 차례 자신의 집에서 지인들과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다음 달 첫 재판을 받습니다. 그는 2008년부터 아프리카TV BJ로 활동해왔고, 애청자 수는 50만 명에 달하죠. BJ 김강패는 8월 아프리카TV 방송국 영구 정지를 당했습니다. 정지 사유는 자체 기준 위반(사회적 물의 및 서비스 악영향)으로 안내됐죠.
코인 게이트도 발발(?)했습니다. BJ 수트(본명 서현민)는 2021년 회사가 발행한 가상자산이나 사업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고 투자금을 속여 빼앗은 혐의, 법인계좌 체크카드를 이용해 아프리카TV 별풍선을 구매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당시 코트, 케이, 감스트, 철구, 창현, 남순, 이영호, 염보성 등 유명 BJ들에게 수천만 원 상당의 별풍선과 명품 등을 선물하고 행사 상금을 지원하면서 환심을 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8월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는데, 그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입니다.
유해 콘텐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BJ들의 음주, 욕설, 폭력적인 언행은 그대로 전파를 탔고, 신체를 과도하게 노출하는 '벗방'도 횡행했습니다. 콘텐츠 주제로 토크·캠방을 내세운 여성 BJ들은 대부분이 상체가 훤히 드러난 옷을 입고 방송을 진행했는데요. 방송 패턴도 비슷했습니다. 일정 금액 이상의 별풍선이 터지면 감사 인사를 전하며 선정적인 춤을 추는 방식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했죠. 최근 화제를 빚은 BJ 과즙세연의 주요 콘텐츠도 유사한 맥락입니다.
여기에 사행성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아프리카TV는 사회적 이슈의 '발원지'라는 오명을 단단히 쓴 상황이었습니다. 최근 개인 방송에서 시청자들과 사행성 내기를 한 30대 BJ A 씨가 검찰에 송치됐는데요. A 씨는 게임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BJ가 게임에서 이길지, 질지 예측해 별풍선을 베팅하도록 했습니다. 예측에 성공하면 베팅 금액에 따라 상품권 등도 함께 지급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진행했죠. 해당 BJ는 이런 방식으로 수천만 원의 판돈을 걸고 시청자들과 사행성 내기를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행성 방송을 이어간 BJ가 A 씨 외에도 다수 확인됐다는 겁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잇따르자 아프리카TV 측은 결국 사명 변경을 포함해 기존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강수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엑셀 방송'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엑셀 방송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별풍선 후원 내역과 BJ들의 순위를 엑셀 문서처럼 정리해 공개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요. 주로 다수 BJ들이 단체로 진행하는 방송에 여러 명의 여성 BJ가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곤 합니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BJ에게 별풍선을 쏘고, 이를 바탕으로 출연 BJ 간 순위가 매겨지죠.
라이브 방송에서 별풍선은 후원금일뿐 아니라 BJ를 움직이게 하는 수단입니다. BJ는 별풍선을 보낸 시청자의 닉네임을 언급하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시청자가 요청한 리액션을 하거나 코멘트에 반응하는데요. 엑셀 방송은 이 같은 문화를 적극 활용합니다. 시청자가 보낸 금액에 따라 BJ의 순위가 매기면서 팬들 간 경쟁을 부추기고, 결국 더 많은 후원금을 내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액에 따라 순위가 바뀌는 만큼, 이 과정에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자극적인 장면이 다수 등장합니다. 여성 BJ들은 노출 의상을 입은 채 적극적인 리액션과 선정적인 춤을 선보이곤 하는데요. 이 같은 모습에 '사이버 유흥업소'라는 비판도 거셉니다.
그런데 현재 숲에서 별풍선 수익을 가장 많이 올리고 있는 최상위 스트리머 10명은 모두 엑셀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엑셀 방송으로 잘 알려진 인기 BJ 커맨더지코는 지난해 별풍선 3억6000여 개를 받고 200억여 원을 수령해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죠. 24일 별풍선 집계 사이트 풍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받은 별풍선 개수만 2억9961만 개를 훌쩍 넘습니다.
숲은 플랫폼 운영과 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만 14세 미만 청소년이 방송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고, 24시간 모니터링으로 운영 정책을 위반하는 콘텐츠도 제재하고 있죠. △성기 노출 △성관계 행위 △음란물 유포 및 홍보 등이 적발될 경우 영구 정지와 같은 강력한 제재를 취합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스트리머에 대해서도 최소 3일부터 영구 정지까지 조치할 수 있죠.
그러나 일각에서는 숲 측의 규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또 별풍선 매출이 많은 인기 스트리머에 대한 규제가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계속되고 있죠.
인기 스트리머 감동란은 지난달 엑셀 방송을 진행하는 일부 스트리머들이 무리를 형성해 권력 집단이 됐고, 마약이나 성매매 등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졌다는 취지의 폭로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TV 자체도 이미지를 양지화하고 싶다고 이름까지 바꿔가며 발버둥 치지만, 성매매 알선이나 마약 등 중범죄에 굉장히 관대한 걸 보면 모순의 극치"라며 "엑셀 방송 등장 후 개인 방송이 점점 어려워졌다. BJ들은 돈을 벌기 위해 소위 있는 놈들끼리 뭉치고 그들에게 기생하려고 한다. 그 무리에 껴서 돈을 벌려면 마약도, 성관계도 같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끼워주지도, 별풍선을 쏴주지도 않는다. 이곳은 사이버 포주가 가득한 동물의 왕국"이라고 일갈했죠.
현행법상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인터넷 방송 플랫폼은 방송법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방송법을 위반하는 콘텐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원에서 삭제나 차단 등 조처가 가능하지만, 숲과 같은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나 스트리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는 업계 사이에서도 말이 갈리는 실정입니다.
결국, 스트리머들에 대한 규제 권한은 전적으로 숲 측에 있는 셈인데,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연예 기획사는 아닌 만큼 방송 외적의 문제를 관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스트리머의 방송 뒤 사생활이 왜 플랫폼의 책임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죠. 다만 숲이 주식시장에 상장도 돼 있는 만큼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작지 않고, 벗방, 엑셀 방송 등 저질의 콘텐츠 문제의 해결 없이는 이번 개편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관점이 지배적입니다. 결국 이미지 쇄신에 성공하기 위해선 사명 변경에 그치는 게 아니라 콘텐츠의 질이 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지속적인 논란에 숲은 정치권의 부름도 받았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종합국정감사 증인 명단에 정찬용 숲 대표이사가 이름을 올린 건데요. BJ·시청자 간 사행성 유도와 청소년 도박 문제 등에 답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