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클수록 소상공인 종속 못벗어
배달끊고 자생력 키우는 계기삼길
가을 날씨가 청명한 10월의 어느 공휴일에 친구들과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평창동 방향으로 내려왔다. 시간이 일러 가볍게 ‘치맥’으로 뒤풀이하기로 하고 부암동에 있다는 유명한 치킨집을 찾아갔다. 오후 4시30분께라 충분히 자리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식당 앞은 이미 대기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대기명단에는 앞에 20팀이 넘는 것으로 나왔다. 잠시 고민하다 시간 여유도 있어 이름을 올리고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얘기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30분이 지나니 답답하고 조급증이 밀려왔다. 그냥 가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끝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기다리다 보니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뭐가 특별해 공휴일에 이리 사람이 많이 몰릴까. 그 많은 치킨집을 놔두고 여기까지 와서 기다려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 가족, 연인, 외국 관광객 등으로 다양한 형상의 손님들을 볼 수 있다. 다들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다.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고 가는 사람은 없다.
이 가게의 치킨 한 마리 가격은 2만2000원이다. 일반적인 치킨집과 비교해 엄청 비싸다. 포장해 가는 손님이 많은데 포장 치킨도 가격은 같다. 기다리며 궁금해 배달의민족(배민)에서 검색해 보니 이름이 안 뜬다. 배달을 안 한다고 한다. 치킨집인데 배달을 안 하다니….
치킨은 대표적 배달음식이다. 최근 배민이 중개수수료를 6.8%에서 9.8%로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치킨집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정률제에서 수수료율을 올린 것은 약탈적 가격인상이다. 영업에 기여한 것이 없이 단지 중개했다는 걸로 매출액의 10%를 떼어가니 세상에 이런 돈벌이가 어디 있나. 소상공인들이 고생스럽게 장사해 배민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 수수료 부담이 과도해 장사하면 할수록 밑져서 망한다는 소상공인의 하소연과 원망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부암동 치킨집은 이런 소란에서 자유롭다. 배달하지 않으니 배달 앱의 중개수수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곳들이 의외로 많다. 동네 중국집 중에서도 배달하지 않는 식당이 있다. 당산역 부근의 아파트 상가 2층 중국집도 배달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평일 점심시간에 가면 대기는 기본이다. 상가의 좁은 복도 벽 쪽에 플라스틱 간이 의자를 놓아 손님들이 앉아서 대기하도록 배려한다. 앞 사람이 들어가면 차례로 자리를 옮기며 이동한다. 중국집이니 당연히 짜장면과 짬뽕이 맛있다. 요리는 가격이 싸며 푸짐하다. 특별히 군만두가 일품이다. 그 만두를 먹으러 멀리서 오는 손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음식 배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배달하지 않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제한이 성행하던 시기에 배달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었다. 이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는 종식되었지만, 소상공인이건 소비자건 그동안 익숙해진 배달 앱을 떠나지 못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소상공인이 배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출 손실로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다.
배달 주문을 포기하며 배달을 끊을 수 있는 소상공인은 별로 없다. 지방의 몇몇 소상공인 단체를 중심으로 배달 앱 독립을 시도한다. 하지만, 단지 배민을 탈퇴해 공공배달 앱으로 환승하는 것에 불과하다. 배민에 비해 공공 앱의 경쟁력이 미흡해 호응이 크지 않다.
배달 앱은 가두리 양식장과 같다. 소상공인에게 편리하고 안락한 서비스를 제공해 안주하게 만들지만 언젠가는 먹잇감으로 잡아먹는다. 당장의 매출을 위해 배달을 이용할수록 배달 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영원한 갈취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배달 앱과의 상생이나 수수료 인하는 가두리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미끼에 불과하다. 가두리에서 양식된 물고기는 가두리를 벗어나 바다로 나가지 못한다. 험한 바다에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궁극적인 배달 앱에서의 독립은 배달을 끊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힘든 길이다. 하긴 ‘독립’만큼 어 렵고 고된 길이 있을까. 소비자들은 현명하다. 배달에 들어가는 노력과 자원을 음식에 투자하면 소비자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배민의 수수료율 인상이 소상공인에게 배달 앱 독립의 의지를 심어주는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