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확고한 의지로 AI 도입 중기도 있어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를 했던 정 모씨는 기업이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린다는 건 마블 히어로 닥터스트레인지의 ‘경우의 수’에 빗댈 수 있다고 했다. 막대한 양의 결괏값과 측정값을 토대로 최적의 생산 방식을 AI로 시뮬레이션하면 생산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단 얘기다. 게다가 기계 학습(머신러닝)을 통해 장비의 유지 보수 시기를 예측하면 불필요한 가동 중단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 통상연구원의 ‘생산가능인구 감소 대응을 위한 기업의 생산성 제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생산성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7)보다 높은 2.47로, 조사된 20개국 중 아일랜드, 헝가리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대기업의 경우 생산성을 늘리기 위한 자원을 아끼지 않는다. 고성능 카메라, 각종 초고정밀 측정 장비, 최고급 석·박사 인재, 관련 기술 특허 사용료 부담 등 자금 여력은 넘친다. 오히려 비용보단 자원 수급이 문제다.
예컨대 지난해 반도체 부문 매출액 67조 원이었던 삼성전자가 반도체 수율을 1% 올리면 단순 계산해도 6000억 원 이상 이익을 늘릴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릴 뿐이라고 자조한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우선 제조기반 시설에 AI를 활용하기 위해선 카메라와 결과 수집 장비, 개선방법을 도출하는 프로그램, 전문 관리 인력 등이 필요한데 비용적으로 부담된다”라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경영진의 입장에서 자동화할 수 없는 생산설비도 많은데, 현실적으로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는 게 더 낫다는 의견이 많다”라며 “쓴 만큼 효용이 있을까라는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AI 도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결국 ‘쓴 만큼 효과를 얻을지’ 예상할 수 없어서다. 대기업의 경우 연구개발(R&D) 비용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자금과 인력 등 자원 여력이 충분하지만, 중소기업은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중소기업의 AI 도입에 큰 걸림돌은 자금과 이해도였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AI 도입에 적극적인 기업들은 장애 요인으로 △경영자(CEO)의 AI에 대한 이해 부족 △AI 전문 공급기업 생태계 발달 미흡 △AI 기술 도입 투자 비용, 도입·활용에 대한 불확실성 △AI 인재 확보 어려움과 데이터 확보 문제 등을 꼽았다.
권준화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AI 수요 관점에서 볼 때 중소기업이 AI를 도입·활용할 수 있도록 통합적인 지원체계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라며 “공급 관점에서 AI 전문 역량을 보유한 AI 분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육성 지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산업별 세분화된 중소기업의 AI 지원 정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라며 “중소기업의 AI 도입 및 활용에 따른 조직문화 관리 역량 지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중소기업의 AI 도입은 쉽지 않다. 그러나 경영자(CEO)의 의지로 난제를 극복해 혁신을 이루려는 중소기업들도 있다.
친환경 콘크리트 블록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A는 CEO가 AI와 스마트공장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생산성 향상을 시도하고 있다. 연 매출은 138억 원이고 직원 수는 52명으로 작지만 2018년부터 3개 스마트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스마트공장 고도화의 일환으로 AI 기술 도입을 고려 중이다. AI 도입 전 준비 단계로 기업 연구소에서 데이터를 확보하고, 정교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스마트공장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AI 기술과 접목하면 생산관리와 품질관리 측면이 향상할 거로 기대한다. 이 기업은 CEO가 AI를 활용한 생산성 향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반의 CCTV 관제·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하는 매출액 150억 원가량의 B 기업은 2017년부터 AI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에 활용하고 있다. 이 기업은 GIS 엔진 핵심역량을 토대로 AI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시스템과 서비스를 계속 개발할 계획이다.
피부관리 및 예방 솔루션, 아토피 진단 관련 디지털 의료기기 개발·제조, 디지털 병리 서비스 등을 하는 C 기업은 2022년부터 AI에 관심을 가지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임상 실험 서비스 사업을 확장했다. 이 기업은 병원 의사가 필요한 정보를 축적해 의사결정을 지원, AI 기반으로 아토피 등 민감성 피부를 가진 사용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이처럼 기업의 혁신을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CEO 의지의 확고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