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점유율 확대할 수 있는 시간 벌어
중국 업체들의 유럽 진출 확대 가능성도
"장기적으로는 유럽ㆍ제3국서 경쟁 격화"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한 가운데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중국의 대(對)유럽 진출이 본격화할 것이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30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29일(현지시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최종 승인했다. 기존 관세 10%에 7.8~35.3%의 추가 관세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관세는 이날부터 향후 5년 동안 적용된다.
관세율은 EU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에 따라 다르게 책정됐다. 상하이자동차그룹(SAIC) 등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업체들은 45.3%의 최고 세율이 적용된다. 비야디(BYD)는 27.0%, 지리자동차는 28.8%의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중국에 생산공장을 둔 테슬라 역시 17.8%의 관세를 부과받게 됐다.
EU 집행위의 조치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싼값에 수출되는 전기차 때문에 역내 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실제 중국산 전기차는 저가 공세를 통해 유럽 내에서 무서운 속도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에 따르면 EU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21.7%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에서 생산된 비중국 브랜드의 전기차를 포함한 수치로 2020년 2.9%에서 3년 만에 무려 18.8%포인트(p) 확대됐다. 지난해 중국 브랜드의 EU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7.6%였다.
이번 관세 부과 조치로 인해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면 현대자동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는 중국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없어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시장은 전기차 보급률이 약 20%에 이를 정도로 중국 다음으로 큰 전기차 시장”이라며 “EU에서 이번에 관세 장벽을 세웠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가지면서 유럽 전기차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조치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반사이익은 누릴 수 있는 기간은 단기적이라는 게 업계의 주된 시각이다. 중국 기업들이 관세 장벽을 피하기 위해 유럽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면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들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EU의 조치는 중국산 전기차 유입을 완전히 막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중국의 역내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라며 “또 중국이 관세 장벽을 피해 동남아나 중남미 등으로 물량을 돌리면 제3국에서의 경합이 격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한 것과 비교하면 이번 EU의 관세율 자체는 높은 편이 아니다”며 “중국산 전기차가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관세를 더 부과하더라도 가격 차이가 상쇄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유럽 전동화 구축 작업에 속도를 높이며 점유율을 확대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체코 공장과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을 생산 거점으로 삼아 현지 전기차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기아 EV3와 현대차의 캐스퍼 일렉트릭 등 유럽 시장에서 선호하는 소형 전기차들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