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는 13일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집권 국민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의회를 전격 해산하고 헌법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등 본격적인 정치개혁 절차에 착수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그의 권력을 넘겨받은 이집트 군 최고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군은 의회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6개월 동안 국정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이 이끌고 있는 군 최고위원회는 또 구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개헌 위원회를 구성한 뒤 새 헌법안이 나오면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야당 지도자 중 한 명인 아이만 누르 알-가드당 대표는 군 최고위의 조치가 시위대를 만족시킬 것이라며 이는 혁명의 승리라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 이집트의 유력 대권 후보인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12일 “지난해 11월 총선을 통해 구성된 의회가 이번 민주화 시위의 한 원인”이라면서 의회 해산과 총선 재실시를 요구했다.
무바라크 체제의 노골적인 야권 탄압과 부정 속에 치러진 지난 총선에서는 집권 국민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83% 이상을 차지했으며, 친정부 성향의 무소속 당선자까지 합치면 여권의 의석 점유율은 90%를 훨씬 초과한다.
이런 가운데, 이집트 과도내각도 이날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한 이후 처음으로 회의를 열고 치안질서의 조속한 회복을 우선적 과제로 제시했다.
아흐메드 샤피크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의 우선적 과제는 치안을 회복하고 시민들이 일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 뒤 서민들의 식품 가격을 낮추는데에도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샤피크 총리는 또 무바라크가 국외로 출국했다는 소문과 관련, “그는 여전히 홍해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에 있다”고 밝혔다.
앞서, 군 최고위원회는 선거를 통해 새 민간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샤피크 총리 내각이 과도 정부의 역할을 맡도록 했다.
샤피크 총리 내각은 이집트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자 무바라크가 종전의 아흐메드 나지프 총리 내각을 해산하고 새로 구성한 정부이다.
부정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나지프 전 총리는 현재 가택연금됐으며,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을 지시한 인물로 알려진 하비브 알-아들리 전 내무장관과 국영 매체를 통해 무바라크 정권을 찬양하는데 앞장섰던 아나스 알-피키 공보장관 등 전직 각료 3명도 출국금지된 상태에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18일 동안 이어진 시위 과정에서 민주화의 성지로 부상한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일대에는 이번 시민혁명 이후 처음으로 차량 통행이 재개됐다.
많은 시민은 이날 빗자루를 들고 타흐리르 광장을 찾아 쓰레기를 치우고 비닐 천막과 텐트 등을 거둬내며 시민혁명의 성공을 자축했다.
한때 수십만명의 시민이 운집했던 이 광장에서는 청년단체 회원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 수천명이 향후 정치개혁의 이행을 지켜봐야 한다며 군의 철수 요구를 거부해 군인들과 마찰을 빚었다.
이런 가운데, 경찰 1000여 명은 이날 내무부 청사 앞에서 “경찰과 시민은 하나다”라는 구호 등을 외치며 지난 시민혁명 과정에서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나타내고, 폭력적인 진압을 지시한 알-아들리 전 내무장관의 처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 임금 인상과 의료보험 혜택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내무부 청사를 경비하는 군인들과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군은 공중으로 총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경찰 수백명은 또 가두행진을 통해 타흐리르 광장으로 몰려가 유혈 진압에 대한 참회성 시위를 벌여 시민들로부터 환영의 박수를 받았다.
무바라크가 지난 11일 퇴진을 한 이후 이틀째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이집트에서는 야간 통행금지 개시 시간도 종전의 오후 8시(∼다음날 오전 6시)에서 12시로 4시간 늦춰졌으며, 기업들도 점차 업무를 재개하는 등 정상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