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깎는 구조조정 재무구조 개선
집안 살림을 하다보면 튼튼한 가계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맨다. 또 부채가 과도한 경우에는 미래를 위해 들어둔 보험도 중도해지 해야 하는 아픔을 참아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때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인원 감축과 함께 대표적인 구조조정 방법이 바로 자산매각이다.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부채를 상환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식이다. 때로는 자산매각을 통해 확보한 현금을 투자재원으로 활용,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빚 갚아야 산다. 필수자산 빼고 내다 팔아라”= 자산매각에 집중하는 곳은 대부분 M&A(인수·합병)에 성공한,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걸린 기업들이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연이어 인수하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과도한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했다 무너진 C&그룹이 대표적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하고, 2008년에는 알짜회사인 대한통운마저 인수하며 왕성한 식욕을 보였지만 2009년 대규모 M&A에 따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박삼구 회장이 야심차게 인수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매각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금호생명, 금호렌터카 등 그룹 내 알짜 계열사도 매각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간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박삼구 회장이 사퇴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도래했다. 금호아시아나는 이후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에 대한 워크아웃까지 신청했으며, 현재까지도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졸업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지속 중이다.
C&그룹은 더 처참하다.
1990년 자기자본 5500만원의 칠산해운으로 출발한 C&그룹은 불과 10여 년 만에 세양선박, 우방건설, 아남건설, 세모 등을 인수하면서 한때 재계 서열 60위권의 중견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과도한 M&A는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 임병석 C&그룹 회장은 지난 1월 금융권으로부터 수천억원의 사기대출을 받고 부실 계열사를 부당지원하는 등 모두 1조2500억원의 경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STX그룹은 자산매각을 통해 선제적인 재무구조개선에 나섰다. 자산매각을 통해 현금을 확보, 재무건전성을 높여야만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STX 관계자는 “현금보유량을 높여 신용등급을 개선해야 향후 외부차입시 금리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며 “지금 당장은 회사 자산을 팔아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겠냐”고 전했다.
◇ 자산매각으로 투자재원 마련=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토지와 건물을 보유한 기업은 단연 KT다. 하지만 이석채 회장이 부임한 이후 다수의 전화국 부지를 매각하면서 보유토지와 건물을 줄이고 있다.
2011년 KT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KT가 보유한 토지와 건물은 각각 722만6305㎡(218만5957평), 472만1679㎡(142만8307평)이다. 공시지가로만 따져도 토지건물의 가치는 7조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회장이 취임한 2009년에는 802만6769㎡(242만8097평)의 토지와 899만9468㎡(272만2339평)의 건물을 소유했다. 취임 이후 80만㎡(24만2140평)을 매각했다.
KT는 앞으로도 활용가치가 적은 전화국 부지를 중심으로 부동산 매각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10년 부동산 개발 자회사를 설립했다.
KT IR팀장 김영호 상무는 최근 ‘2012년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부동산 관련 매출은 지난해보다 소폭 감소한 50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부동산 매각을 통해 확보한 현금을 LTE 등 네트워크 구축과 비통신 분야 사업에 투자, KT그룹의 지속성장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석채 회장도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부동산 매각을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KT스카이라이프 등 각종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인터넷가입자가 증가하는 등 그룹 체질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최근 하이마트와 웅진코웨이 인수전에 참여한 SK네트웍스도 자산매각을 통해 다른 사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중국 자회사 ‘SK네트웍스 PS’ 지분 67%를 3420만달러에 중국 기업에 매각했다. 지난 2006년 1250만달러에 매입한 뒤 약 6년 만에 3배에 달하는 차익을 얻은 셈이다. 회사측은 이 재원을 바탕으로 M&A와 해외자원개발 등에 적극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도 유휴자산매각을 통해 부채상환과 함께 투자재원 마련에 나설 예정이다, 최종태 포스코 사장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영업현금흐름이 저조하다”며 “비활용성 자산을 활용해 투자재원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유휴자산 매각을 통한 투자재원 마련은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투명성이 지속되면서 차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높은 이자를 물어가면서 외부차입을 하는 것보다는 불필요한 자산정리를 통해 △재원확보 △재무구조개선 △기업자산정리 등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