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은 30여 년 전 자신이 출발시킨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한 일종의 강박증이 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타이탄으로 착각한 채 이 시리즈의 기원을 쫒았고, 프리퀄(시리즈 이전의 스토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자신이 인간들에게 불을 전한 프로메테우스인 것처럼.
시작을 어떻게 풀 것인가. 이미 개봉돼 호불호의 선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기대감은 극도의 희열을 불러 일으켰다. 개봉 전 언론에 공개된 그로테스크한 세트와 ‘인류의 기원’이란 근원론적 주제 의식은 일반적 영화 팬을 넘어 일종의 ‘외계 음모론’ 신봉자들조차 흥분시킬만한 내용이었다. 여기에 ‘에이리언’의 프리퀄 논란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스콧은 영화 개봉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간이 존재할 확률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나사와 바티칸 모두 동의했다.” 과학적·종교적 관점 모두에서 그는 ‘프로메테우스’를 새로운 시작의 발화점으로 자신한 것이다.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당한 타이탄 ‘프로메테우스’를 생각하며 이 거장은 개인이 갖는 존재론적 접근법을 더해 단순한 영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첫 오프닝 시퀀스가 감독이 ‘프로메테우스’의 제작 이유를 함축적으로 담았다면, 영화 속 캐릭터들을 이끄는 러닝타임의 동력이 바로 엔지니어의 존재다. 영화를 보면 지구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메시지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것이 ‘외계의 지구문명 창조설’을 증명한 것이라 굳게 믿는다. 물론 그 믿음의 원천은 엔지니어들이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에 있다. 여기서 “왜”에 대한 언급을 하며 스포일러를 제공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럼 시선은 엔지니어에게로 간다.
30년 전 스콧 감독이 지금의 ‘프로메테우스’를 염두에 두고 ‘에이리언’에 아주 잠깐 스페이스 자키를 등장시켰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앞서나간 것일까. 물론 그럴 의도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프로메테우스’ 개봉 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은 ‘에이리언’ 1편에 아주 잠깐 등장한 스페이스 자키를 이후 2편부터 4편 그리고 시리즈에서 파생된 여러 번외편에서 왜 언급하지 않았는가라고 의문을 가졌단다. 외계 문명 창조론에 귀 기울이는 그로선 스페이스 자키와 인류 문명의 근원 그리고 ‘에이리언’에 등장한 ‘페이스 허거’(우리가 아는 그 괴물)의 교집합이 보임으로써 ‘프로메테우스’를 시작할 수 있던 것이다.
제목과 스페이스 자키를 한 선에 놓고 보면 의미 있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간에게 불을 건넨 타이탄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당한 점이나, 인간을 만들고 다시 그들을 파괴하기 위해 에이리언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설정, 여기에 그 에이리언에게 죽음을 당한 스페이스 자키의 운명은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만든다.
이번 ‘프로메테우스’부터 전작의 모든 캐릭터까지 그의 앤드로이드 캐릭터들은 이중성을 갖는다. 자신을 만든 창조주(인간)에게 지배되는 모습과 함께 공격성을 숨기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로만 보자면 더욱 그렇다. 극중 엘리자베스와 찰리가 인간 창조주인 엔지니어들을 찾아가는 이유를 묻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은 인간을 창조한 이유를 묻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에 데이빗은 “그럼 나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되묻는다. “만들 기술이 있으니”란 말에 데이빗은 “같은 답변을 듣는다면 어떻겠나”라고 말한다. 결코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다.
‘에이리언’ 시리즈 전작들로만 한정해도 스콧 감독의 작품 속 앤드로이드 캐릭터들은 상당히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특히 1편의 애쉬와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빗은 그 궤를 같이 한다. 애쉬가 화물선 노스트로모호 대원 몰래 에이리언을 지구로 이송하는 비밀 임무를 갖고 있었다면,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빗 역시 찰리에게 알 수 없는 실험을 통해 전체 스토리의 변곡점을 전달한다.
결론적으로 스콧 감독은 ‘기원’이란 키워드를 쫒으면서 생산과 파괴로 함축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앤드로이드 캐릭터를 통해 우회적으로 비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의 결말이 더욱 충격적이고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가 출발선을 끊은 ‘에이리언’ 세계관의 근원을 풀어내는 데는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대체 ‘에이리언’이란 생명체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온 것이며, 거대한 화석의 스페이스 자키는 누구인가” “두 가지를 함축한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이들 물음에 대한 해답만큼은 ‘프로메테우스’가 아주 명확하게 제시했다. 재미있는 점은 스콧 역시 외계 문명 전파에 기울어져 있으면서 진화론에도 상당히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이번 영화에 슬며시 끼워 넣었다. 스페이스 자키가 만든 에이리언의 모체가 어떻게 ‘페이스 허거’로 진화했는지 묘사한 점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의 프리퀄이면서 프리퀄이 아닌 새로운 얘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