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희 금융부 기자
4일 오전 예금보험공사 주차장을 지나가는 한 시민이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한 마디 뱉었다. 이날 예보가 주최한 ‘도민저축은행 외제차량 미디어데이’ 행사장에서였다.
‘외제차량’이라든가 ‘미디어데이’라는 행사명칭 단어만 보면 언뜻 모터쇼인 듯 했다.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차량이 줄지어 예보 주차장에 전시돼 있으니 충분히 착각할 만도 했다.
사실 이 차량들은 지난해 영업정지된 도민저축은행의 채규철 회장이 정상적인 은행 거래 절차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돈을 빌려주기 위해 담보로 받아둔 것들이다. ‘억’소리나는 차를 보며 시민이 쓴소리를 내뱉었던 것도 세계적인 ‘슈퍼카’에서 서민들의 등골 뺐던 채 회장이 연상됐기 때문일테다.
예보의 실수는 거기에 있었다.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저축은행 사태에 앞장섰던 그 동안의 노력과 고생이 람보르기니 앞에서 무색해진 것이다.
이번 행사를 마련했던 본래 목적은 도민저축은행 피해 예금자들에 있다. 도민저축은행이 가지고 있던 담보물들을 매각해 거둬들인 환입금으로 5000만원 초과예금자 등의 손실금보전금으로 사용할 명목이었다. 이 ‘애물단지’들을 팔아야 한 사람의 피해 예금자들에게 보상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보의 과오는 실수요자들에게 멋지게 보여야 한다는 단견(短見)에서 비롯됐다. 이날 각 차들 앞에 배치된 차량 설명 푯말에는 차종, 색상, 연식·배기량, 가격(신차기준)만 적혀 있었다. 언론 브리핑에서도 차량의 현황, 보관 경위 등 차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을 뿐 피해 예금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 정도에 대해선 한 두 줄의 언급에 그쳤다.
결국 피해 예금자들을 위해 애썼던 예보의 노력이 정작 피해 예금자들에게 외면받게된 셈이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기울였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