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박세리(35·KDB산은금융그룹)가 ‘맨발투혼’을 벌이며 한국인 처음으로 우승한 US여자오픈. 이때 최나연(25·SK텔레콤)은 겨우 9살이었다.
박세리는 지금은 골프를 접고 간호사로 일하는 추아시리폰과 72홀을 돌아 동타. 18홀 연장전도 타이. 결국 서든데스 2번째홀에서 우승했다. 장장 92홀을 도는 장기레이스였다.
그런데 최나연은 3라운드에서 ‘신들린 샷’으로 우승컵을 안았다. 이날 무려 버디를 8개나 골라냈다. 코스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자신도 놀라 정도의 스코어였다. 아마도 ‘그분이 오신 날’이 아닌가 싶다.
그의 우승스코어는 4라운드 합계 7언더파 281타.
제67회 US여자오픈골프 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 챔피언십 코스(파72·6954야드)는 1998년 박세리가 생애 두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린 곳.
특히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최하는 메이저대회여서 코스를 까다롭게 세팅하는 것이 정평이 나 있다.
이번 대회에서 세계여자골프랭킹 1위인 청야니(대만) 조차 합계 14오버파 302타를 쳤다.
언더파로 경기를 마친 선수는 단 2명. 최나연과 3언더파 285타를 친 양희영(23·KB금융그룹)이다.
65위로 맨 꼴찌를 한 선수는 무려 25오버파 313타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03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2004년 ADT캡스 인비테이셔널에서 내로라하는 프로 들을 제치고 깜짝 우승했다.
2005년 프로 전향한 뒤 국내 투어에서 3승을 거뒀다. 2007년 LPGA 투어 조건부 시드를 받아 2008년 투어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2009년 9월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첫 정상에 올랐다. LPGA 투어 55개 대회 출전만이었다. 같은 해 국내에서 열린 하나은행 LPGA 챔피언십에서 다시 우승했고 2010년 같은 대회에서 2연패에 성공했다.
2010년 LPGA 투어 상금왕과 최저타수 부문 1위를 휩쓴 최나연은 지난해 10월 LPGA 투어 사임다비 말레이시아에서 우승하며 한국(계) 선수의 LPGA 투어 10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2위와 스코어차가 크기했지만 최나연의 우승은 집중력에 대한 승리였다.
그래도 위기를 맞은 홀은 10번홀(파5). ‘아뿔사’티샷이 왼쪽 숲 속 해저드 방향으로 날아갔다. 경기 진행 요원들이 숲속을 뒤졌지만 볼은 온데간데 없었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시 티잉 그라운드로 돌아가 세번째 샷을 했다. 벌타 1타를 부과받고. 샷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러프를 오고 가다가 6번째 만에 볼을 그린 위에 올린 최나연은 2m짜리 더블보기 퍼팅도 홀이 외면하는 바람에 이홀에서 3타를 까먹었다.
양희영과 2타차.
그러나 최나연은 11번홀에서 침착하게 두 번째 샷을 홀 1.5m에 붙여 버디를 골라낸데 이어 12번홀에서는 깊은 러프에서 빠져나와 5m 거리에서 파를 잡아냈다.
행운도 따랐다.
13번홀(파3)에서는 티샷한 볼이 워터 해저드로 날아갔다. 경계석을 맞고 코스로 들어왔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양희영이 스코어를 못줄이는 사이 최나연은 15, 16번홀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타수차이를 5타로 벌렸다.
18번홀에서 파온에 실패한데 이어 어프로치마저 핀에 못미쳐 보기를 범했지만 우승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박세리로부터 축하세례를 받은 최나연, ‘최고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