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한국국제금융연수원에 첫 발을 들이자 마자 받은 느낌이다. 연수원 입구까지 이어진 길 양 옆에는‘금융’이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작은 정원이 잘 정돈돼 있었다. 연수원은 네모 반듯한 건물이 아닌 유럽의 고풍스런 저택을 연상케 했다.
김상경 국제금융연수원장은“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국제금융을 배우는 장소라고 건물도 삭막하게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2층형 주택에 교육 공간을 만들었죠. 즐거운 마음으로 강의를 들어야 그 효과가 더 크다고 봅니다.”
1975년 제일은행(현 SC은행)에 입사해 금융권에 처음 발을 들인 그는 37년의 은행생활을 마무리하고 한 발 물러난 곳에서 후배 금융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연수원 건물 하나에도 본인만의 색깔을 입힌 그는 여전히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 CEO 향한‘수백번의 이메일’…“능력은 기본, 도전과 인내를 더해라”
김 원장이 안정적인 직업을 스스로 그만두고 국제금융연수원을 시작한다고 했을 당시 주변의 만류는 대단했다. 그 자신 조차도 성공을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중국은행(뱅크오브차이나)을 그만두고 그 동안의 금융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1995년 10월 국제금융연수원을 설립했다.
국내은행에서 실시하는 금융교육과 차별되는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하며 한국국제금융연수원만의 차별성을 형성한 덕분에 내년 4월까지의 강의가 이미 꽉 찼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1997년 닥친 IMF로 그와 같이 시작한 수많은 사설 금융연수원이 문을 닫았다. 김 원장은 그 당시에도 특유의 도전정신을 발휘, ‘실업자 교육’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실업자 교육을 실시하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노동부 산하의 재단법인으로 승인되야 해당 교육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
정부와의 딜(deal)이었고 쉽지 않은 사안이었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다.
그는“어려운 일이었지만 포기하면 끝이었기 때문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시도 했다”며“지금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경쟁력 있을까 생각하고, 계속해서 도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고 말했다.
서른 두살의 나이에 비서직을 그만 두고 외환딜러계에 뛰어든 그의 도전정신과 인내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다.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CDCS(국제공인 신용장전문가) 자격증을 도입했다. CDCS는 수출입기업들의 금융 거래시 반드시 필요한 국제 무역대금 결제 관련 외환 및 수출입 실무 전반에 걸친 지식 등의 능력을 인증하는 자격증이다. 김 원장이 이 자격증을 도입하기 전까지 응시자들은 시험을 보기 위해 홍콩까지 가야했다.
CDCS 도입을 위한 영국 은행엽합회와의 협약 체결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미 CDCS를 도입한 중국 지인으로 부터 영국 은행연합회와의 연락 경로를 알아냈지만 비서에게 남긴 메시지는 묵묵부답이었다.
CEO의 이메일을 알아내 매일 같은 시각에 이메일을 보낸 결과 드디어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과장하지 않고 백 번이 넘게 이메일을 보냈다”며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의지를 보인 것이 CEO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두드려야 열린다’…“여성 금융인의 멘토 역할에 앞장서”
김 원장은 2003년 부터 금융권 여성 고위 임원들의 모임인 ‘여성금융인 네트워크’의 회장을 맡아 후배 여성 금융인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오고 있다. 그는 금융권에서 과장·차장급의 경우 20%가 여성이지만 부장급으로 올라가면 그 비율이 1%로 크게 축소된다며 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적극성의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금융인의 능력은 남성 못지 않지만 자신의 능력을 내보이는 적극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김 원장은 “대부분의 여성은 능력만 있으면 승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며 “인적 네크워크를 잘 관리하는 것도 또 하나의 능력으로 ‘두드려야 열린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 원장은 은행권 고위 인사가 함께 참여하는 분기별 여성금융인 모임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꼭 갖는다. 여성 금융인들이 자신만의 특별함을 내비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김 원장은 “60~70여 명의 여성금융인 한명 한명의 자기 소개는 정말 훌륭하다”며 “그 자리에서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강점을 가감없이 드러낸다”고 칭찬했다. 그는 그 자리를 통해 여성금융인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금융권 인사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 만날 때는 상대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하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며 “한 번 만난 사람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성있게 연락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 역시 30~40년 전에 맺었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김 원장은 올해부터 여성가족부의 요청을 받아 금융권 여성 관리자를 대상으로 ‘여성 리더십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임원직까지 오르지 못하고 도태되는 여성 관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리더십은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 아닌 만큼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 교육을 통해 부하 직원을 다스리는 힘, 상사와 의견을 조율하는 협상력 및 인맥관리 노하우 등 실질적인 업무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전수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대리, 과·차장 및 지점장을 대상으로 세번의 교육이 이뤄졌고 내년에는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방법을 추가해 보다 다양한 내용으로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60살을 훌쩍 넘긴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건강해진 기분이라고 웃어 보였다.
“상대방이 나의 조언으로 인해 활력을 얻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있다. 앞으로도 여성 금융인과 국제적인 금융인재가 되고자하는 후배들을 위해 나의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인맥을 최대한 제공할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말하는 김 원장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