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내년부터 0~2세 보육지원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다. 하지만 불과 열흘 만에 정치권의 반발에 부딪혀 백기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임 장관이 대선을 80여일 앞 둔 시점에서, 그것도 시행 7개월 만에 ‘폐기’라는 카드를 꺼낸 속내가 자못 궁금해진다.
국민 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정치권의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또 개편안이 예산안 심의와 통과의 열쇠를 쥔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당장 여야 대선후보까지 나서 “무상보육을 밀고 나가겠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예산 심사 과정에서 ‘증액’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국민을 달랬다. 가뜩이나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민심을 잃을까 여야 모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흔들리는 정치권을 보면 임 장관의 승부수가 먹힌 것으로 보인다. ‘대선’이라는 대마를 쫓던 정치권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나아가 임 장관은 “모두 내 책임”이라며 비난을 끌어안았다. 또 정치권의 반발을 예견한 듯 지난달 27일 있은 2013년 복지분야 예산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국회와 맞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며 자세를 한껏 낮췄다.
왜일까? 임 장관이 정치권의 후폭풍과 국회통과가 어렵다는 것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복지부가 개편안을 내놓자 무상보육의 존폐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일거에 정치권으로 쏠렸다. 결과론적으로 정부는 개편안 등 최선을 다했지만 정치권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셈이 된다. 책임을 면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사실 무상보육 혼란의 진원지가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결국 임 장관이 무상보육 혼란의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기려고 승부수를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짚어야 할 게 있다. 이유야 어떻든 국민을 볼모로 승부수를 던지는 장관을 보면서 한국의 출산율이 1.23명까지 떨어진 것을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인구 유지를 위한 출산율 2.2명보다 한참 낮다.
아이의 보육과 양육은 단순히 아이만을 대상으로 한정할 게 아니라 저출산 해소와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등 종합적이며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지난 8월 2012년 산부인과 전공의 후기 모집 결과 66명 정원 중 단 2명만이 지원했다. 산부인과는 이미 비인기 과가 돼버렸다. 임 장관은 지난 6월29일 장관실에서 산부인과학회장단과 면담을 가졌다. 산부인과가 기피 대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했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