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내가 주도" 86% 달해, 휴가·여가… 누구 얘기죠?
김씨는 “지난 9월 이사를 하면서 가까스로 아이 유치원을 옮겼는데 무조건 오후 6시30분에 데리고 가야 하는 곳이다. 회사 눈치를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번번이 정시에 퇴근할 수 없기에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일과 육아, 가정이라는 3중고를 겪는 워킹맘들의 삶은 버겁고 우울하다. 워킹맘들은 △일·가사·육아 3중고 △남녀 임금격차 △출산에 따른 경력 단절 △직장내의 차별 등의 불이익을 호소하고 있다.
◇월화수목금금금… 고단한 ‘삶’
통계청이 발표한 ‘2012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만18세 이하의 자녀를 둔 워킹맘 중 30.6%는 경제·직업·건강 등 전반적인 삶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가사분담 실태’에 대한 응답에서는 워킹맘들의 고단한 일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워킹맘 중 가사를 자신이 주도한다고 답한 비중은 무려 86.5%에 달했다. 이는 전업주부인 ‘전업맘’이 응답한 89.9%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런 이유로 워킹맘들은 전업맘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워킹맘들은 주말이나 휴일의 여가 활용을 묻는 질문에서도 62.9%가 가사에 얽매였다.
또 휴가 기간에도 특별한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워킹맘연구소가 실시한 ‘워킹맘 여름휴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워킹맘들은 휴가 기간에 가장 많이 한 일로 ‘아이와 놀아주기’가 73.3%를 차지했다. 2위로는 ‘육아’(13.3%), 3위는 ‘집안 일’(6.6%)이 뒤를 이었다.
또한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조사한 ‘워킹맘의 고통지수’도 5점 기준에 3.04점으로 평균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 회사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함께 자녀양육 컨설팅기관이 설문조사한 ‘워킹맘 스트레스’에서 88.9%가 ‘우울함을 느낀다’고 답해 워킹맘들의 우울증 위험 노출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 소장은 “휴가 기간에도 가족을 챙기고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쉴 수 없는 워킹맘들의 삶은 고달픔 그 자체”라며 “워킹맘들의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및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경력 단절로 남녀 임금격차 39%… OECD 1위
워킹맘의 경력 단절 문제는 곧 낮은 임금을 의미한다. 남자 동료와 입사를 같이 했어도 출산이나 육아를 이유로 휴직할 경우 경력의 연속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발표한 우리나라 남녀의 임금 격차는 39%에 달했다. 남녀 임금 격차는 10년째 28개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를 지키는 불명예를 안았다.
즉 여성이 남성보다 39% 정도 임금을 덜 받는다는 뜻이다. 이 격차는 OECD 평균(15%)의 2.6배나 된다. 2위 일본(29%)과도 10%포인트 차이가 났다.
한국 남녀의 임금 격차는 10년 전인 2000년에도 40%로 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이후 10년간 격차는 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이웃 일본이 34%에서 29%로 낮아진 것을 비롯해 이스라엘이 28%에서 21%로, 미국 23%에서 19%로, 캐나다 24%에서 19%로, 오스트리아 23%에서 19%로 각각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현저히 낮은 것은 출산·육아 부담에 따른 경력 단절 현상 때문이다. 육아를 마치고 다시 취업해도 이전보다 지위가 낮고 고용 안정성도 떨어진다. 또 한직장에 오래 근무해도 단순 사무직, 비정규직이 많은 것 역시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여성 취업자 중 자영업자 등을 제외한 순수 임금근로자는 73.6%로 이중 상용직이 37.0%, 임시직 28.7%, 일용직 7.9%였다. 고용계약 기간이 1년 미만인 임시·일용직이 상용직과 거의 같았다.
◇정부 정책, 기업 의지 ‘미흡’
워킹맘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부 정책이나 기업 제도 등은 여전히 미흡하다.
영유아보육법에는 여성근로자 300명, 또는 근로자 5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직장 내 어린이집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업장이 지역 어린이집과의 위탁계약 또는 보육수당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한 예외조항 때문에 기업이 굳이 어린이집을 직접 설치하려고 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0년 말 기준 833개 직장보육시설 설치 의무 대상 기업 가운데 30%가량이 보육시설 설치나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일·육아·가사 3중고에 시달리는 워킹맘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