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 노모 연소득 200만원도 안돼… 기초수급 받으려 혼인신고 포기도
“신혼이지만 혼인신고도 못 하고 있어요.”
지난 17일 오후 3시께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던 정모(46·여)씨가 꺼낸 말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 끝에 지난해 여름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혼인신고는커녕 남편과 함께 살지도 못 하고 있다.
뇌병변1급인 정씨는 월 60만원의 기초수급비를, 지체장애인 남편은 현재 360시간의 활동보조 지원을 받고 있다. 둘이 혼인신고를 하면 정씨의 수급비와 남편의 활동보조 시간이 현재보다 줄어든다.
그녀는 “배우자가 있으면 수급비와 활동보조 시간을 깎기 때문에 혼인신고도 못 하고 있다. 동거만 해도 수급비가 40만원으로 줄고 남편의 활동보조 시간은 70시간밖에 허락이 안 돼 주소지도 못 옮겼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직계1촌 이내의 혈연관계나 배우자(부양의무자)에게 일정 소득이 있으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수급비와 활동보조 지원은 이들 부부에게 생존의 문제다. 정씨는 부양의무제에 걸려 지원이 삭감될까봐 남편과 따로 사는 것을 택했다.
그나마 정씨는 정부 지원을 받아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같은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은 조모(43)씨는 수급자에서 아예 탈락했다. 올해 76세가 된 홀어머니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부양의무자 조항에 걸려 조씨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형은 먹고살기 바빠 연락이 끊겼다. 어머니 소득은 연 200만원이 채 안 돼 나를 보살필 형편이 못된다”며 “스스로 밥벌이라도 해야 하는데 내가 취업할 확률이 높지 않다. 수급자라도 되면 좋은데 어머니가 돌아가셔야 수급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모(38)씨는 자립의지가 있지만 포기한 경우다. 뇌병변1급인 김씨는 어릴 때 시설에 들어간 수급자다. 자립의지가 있는 그는 직접 500만원이 넘는 돈을 모아 김포의 한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모에게 있는 단 한 채의 집 때문에 시설을 나오면 수급자에서 탈락한다는 말에 어머니가 그의 자립을 막았다. 간신히 먹고 사는 부모가 아들의 생계까지 책임지기 어려워 만류한 것이다.
윤모(42)씨는 부양을 기피하는 아버지 때문에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윤씨의 아버지는 그를 부양할 능력이 있지만 일찌감치 윤씨를 시설에 보냈다. 아버지가 있는 윤씨가 자립을 위해 시설에서 나오자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복지부 지침에는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하거나 부양이 어려울 경우 이를 감안토록 하나 현장에서는 실제 부양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윤씨가 아버지에게 주민센터에 ‘부양기피’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렇게 하면 내가 부도덕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며 거절 당했다. 어떻게든 자립하려 노력했지만 2009년 홀로선 뒤 그는 공공근로 3개월, 사회적기업에서 6개월 일한 것이 전부다. 윤씨는 현재 지자체를 상대로 수급탈락 이의 신청을 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