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을 대상으로 한 근저당 설정비 반환소송에서 대출자 승소 판결이 나왔다. 대출 계약서에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에 관한 고객의 의사 표시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면 은행이 설정비를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근저당설정비 부담은 대출자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인 만큼 은행은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종전 판결들을 뒤집는 내용이라 은행권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는 장모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주택담보대출 근저당비 설정비를 돌려달라고 제기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 1심 판결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장 씨는 지난 2009년 9월 신한은행으로부터 1억원의 담보대출 근저당 설정비로 94만700원을 지불했다. 이 가운데 인지세와 국민주택채권 할인비를 공제한 나머지 75만1750원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대출거래약정서와 근저당권 설정계약서 부담 주체란에 수기 표시가 없다”는 점을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법원은 “해당 대출상품설명서의 내용만으로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실질적 개별약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번 사안은 약관이 무효이거나 관련 약정 자체가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며 "담보권자가 원칙적으로 설정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관련 법령 취지에 부합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용은 은행이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지방법원이 내린 주택담보대출 근저당비 설정 소송 판결 가운데 고객이 은행을 상대로 승소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2월6일 첫 근저당비 반환 소송에서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고 이를 포함한 총 6번의 판결에서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은행권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협이 패소한 적은 있지만 시중은행은 지난해와 올해 초 선고된 15건의 관련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이번 사건처럼 계약서 상에 수기 표시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판결한 재판부 측은 “약관에 의해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무조건 부담시킨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선택권을 줬으며 고객들은 이로 인해 금리 감면 혜택을 봤다”는 점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에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존에 승소했던 소송과 같은 사안인데 이번 판결만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며 “즉각 항소해서 상급심의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결로 은행들이 잇따라 승소했던 근저당 설정비 반환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시중은행 뿐 아니라 저축은행과 보험사 등 대출 과정에서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부담시킨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소송 판결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