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가(家)의 혼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길이 사방으로 통하듯이 코오롱은 정·관·재계를 두루 아우르는 넓은 혼맥을 구축하고 있다.
코오롱이 방대한 혼맥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고(故) 이원만 창업주의 역할이 크다. 이 창업주는 특유의 호방한 성격과 뛰어난 화술로 사업과 정치에서 두각을 보이며 당대 명망가들과 관계를 쌓았다.
이 창업주는 국내 처음 합성섬유 나일론을 들여와 우리나라 섬유산업에 혁명을 일으킨 인물로 뛰어난 사업수완을 자랑한다. 또한 경상도 사투리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제조업과 공업단지 창설의 필요성을 역설해 구로·구미공단 조성을 이끌어내며 우리나라 수출 산업의 토대를 다졌다. 이후 그는 초대 참의원과 6~7대 의원을 지내는 등 정·재계의 유력 인사로 떠올랐다.
훗날 이 창업주의 아들인 이동찬(92)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아버지의 배짱과 기술은, 작달만한 키에도 불구하고 마름 씨름판에서 여러 번 황소 코를 꿰잡던 ‘밀어붙이기’ 실력에 힘입은 것”이라며 “화술이 뛰어났고 논리라기보다 표정, 정열이 더욱 설득적 이었던 분”이라고 술회했을 정도다.
◇2세, 정·재계와 연결=이원만 창업주는 동생 고(故) 이원천 코오롱TNS 전 회장과 자녀들의 결혼으로 정·재계의 명망가들과 혼맥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원천 전 회장의 아들은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딸 정희경씨와 결혼하며 코오롱 그룹과 정계를 연결시켰다. 정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정권의 실세로 최장수 국무총리이자 국회의장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창업주는 고(故) 이위문 여사와의 사이에 둔 2남 4녀를 통해서도 혼맥 지도를 넓혀갔다.
이 창업주의 장남 이동찬 명예회장은 평산 신씨가(家)의 무남독녀 고(故) 신덕진 여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 명예회장의 결혼 배경에는 이 창업주의 배려가 있었다. 이 창업주는 일제시대 막바지였던 1943년 학도병 징집을 앞둔 상황에 아들마저 군에 가면 아내가 쓸쓸할 것을 걱정해 이 명예회장에게 “결혼부터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창업주의 장녀 봉필(81)씨는 고향 근처 임병진씨의 아들 고(故) 승엽씨와 혼례를 올렸다. 승엽씨는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코오롱건설 사장, 그룹 부회장까지 올랐다.
차녀 애란(72)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노영태(72)씨와 혼인했다. 3녀 미자(70)씨는 당시 포항 대지주였던 박문학씨의 장남 박성기(75) 전 한국바이린 사장과 결혼했다.
코오롱은 차남 이동보(65) 전 코오롱TNS 회장과 막내딸 미향(60)씨의 결혼으로 혼맥의 화룡정점을 찍는다. 이동보 전 회장은 1974년 제3공화국의 실세 김종필 전 총재의 장녀 예리씨와 결혼했다. 이들의 결혼은 당시 영부인이었던 고(故) 육영수 여사가 적극 주선했다. 육 여사는 이 전 회장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신혼여행 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베풀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전 회장 부부는 성격차이로 파경에 이르렀다.
코오롱은 막내딸 미향씨로 인해 SPC그룹과 연결된다. 미향씨는 고(故)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주의 둘째 아들 허영인(65) SPC 회장과 화촉을 밝혔다.
또한 미향씨의 아들 허진수(36) SPC 상무는 이생그룹 박용욱(54) 회장의 딸 효원(27)씨와 결혼하며 이생그룹과 연을 맺는다. 박 이생그룹 회장은 박용만(59) 두산그룹 회장의 동생으로 코오롱은 멀게는 두산그룹과도 연결돼 있다.
◇코오롱 그룹 성장…3세 더욱 화려한 혼맥 구축=코오롱가의 3세 혼맥은 2세에 비해 더욱 굵직한 정·관·재계의 명망가 집안과 이어져 있다. 2세들의 혼맥은 이원만 창업주가 아직 사업과 정치에서 이름을 떨치기 전인 경우도 있어 평범한 집안과 사돈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3세의 경우 이 창업주가 입지를 다진 후에 결혼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동찬 명예회장과 신덕진 여사는 슬하에 1남5녀를 뒀다. 이 명예회장의 외아들인 이웅열(58) 코오롱 회장은 서병식 동남갈포회장의 외동딸인 창희(54)씨와 결혼했다.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서창희씨는 대외활동에 나서지 않는 편이지만 현재는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과 ‘재단법인 꽃과 어린왕자’의 이사장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장녀 경숙(68)씨는 1969년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아들 문조(74)씨와 혼례를 올렸다. 이 전 국회의장은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0년 정치에 입문, 5선 의원을 지냈다. 국회의장,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대표적인 TK(대구, 경북) 인맥으로 통하기도 했다. 문조씨는 현재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녀 상희(65)씨는 고홍명 한국빠이롯드 회장의 장남 고(故) 고석진 전 빠이롯드전자회장과 결혼했다.
3녀 혜숙(62)씨의 결혼으로 코오롱은 고려해운은 물론 남양유업에까지 혼맥을 넓힌다. 혜숙씨는 고(故)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 이동혁(67) 고려해운 회장과 결혼했다. 이동혁 고려해운 회장의 여동생은 홍원식(64) 남양유업 회장의 부인 이운경(62)씨다.
4녀 은주(60)씨는 고(故)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장남 영철(64)씨와 결혼했다. 신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5녀 경주(55)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최윤석(55)씨와 결혼했다.
◇4세 혼맥은 아직=코오롱의 4세는 아직 미혼이다. 이웅열 회장의 장남 이규호(30) 코오롱그룹 차장은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뒤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이 차장은 차기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꼽히고 있다. 코오롱이 족벌 경영체제가 아닌 장자일계(長子一系)의 경영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코오롱은 이동찬 명예회장이 숙부 이원천 전 코오롱TNS 회장과 경영권 다툼으로 장자에게만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원칙을 세운 뒤 장자만 경영에 참여할 뿐 딸과 사위는 경영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이웅열 회장의 두 딸인 소윤(27), 소민(25)씨는 아직 학생이다. 어머니와 고모들이 모두 이화여대를 나온 영향을 받은 탓일까 소민씨도 이화여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