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 종목서도 여풍당당… 동호인 스포츠 여성 모시기 경쟁
“퍽!”
굉음이 울려 퍼졌다. 태릉 실내 빙상경기장 안에는 요란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굉음을 따라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한 선수가 기자를 향해 슈팅을 날렸다.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퍽!”
다시 굉음이 울렸다. 퍽(아이스하키 공)이 펜스를 맞고 튕겨나가는 소리다. 슈팅을 날린 선수는 미안한 듯 재빠르게 빙판 위를 미끄러지며 기자 앞으로 달려와 멈춰 섰다. 그리고 헬멧을 벗자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가 드러났다. 여자였다. 순간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 여자였다.
아이스하키는 ‘금녀의 스포츠’라 할 정도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기에 여자라는 사실이 더 의심스러웠다. 그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다. 오는 4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맹훈련 중이다.
빙상경기장에서의 놀라움은 빙산의 일각이다. 최근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가 예사롭지 않다. 이젠 ‘금녀’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복싱, 레슬링, 씨름, 아이스하키 등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일부 종목에서도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세계 최강의 기량을 자랑하는 양궁, 골프 등 엘리트스포츠는 물론 동호인스포츠와 지도자·행정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아무 것도 없다.
여성들의 존재감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동호인스포츠다. 대부분의 스포츠 동호회는 여성회원 모집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각종 회비 면제와 할인 혜택 등 다양한 특전을 내세우며 ‘여성회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성 비율이 동호회 활성화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전선혜 중앙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여성들의 가사 부담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건강과 미(美)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며 “그만큼 여가 활용 시간은 늘어났고,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율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또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는 남성들보다 적극적이어서 등산, 축구, 골프 등 지극히 제한적이고 고전적인 여가 활동에 충실한 남성에 비해 요가, 댄스스포츠, 펑셔널트레이닝 등 다양하고 세분화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도자나 행정 분야에서도 우먼파워는 빛난다. 여성 최초 대한체육회장에 도전했던 이에리사(59)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양궁행정가로 변신한 김수녕(42) 등 여성들의 영역은 이제 그라운드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성들의 적극적인 스포츠 참여는 관람(응원)문화도 바꿔놓았다. 대표적인 예가 야구장이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임재승(43·남)씨는 야구마니아다. 그는 대부분의 주말·휴일을 야구장에서 보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임씨가 야구장을 찾는 횟수는 크게 줄었다. 수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야구장 분위기 때문이다.
수년 전만 해도 야구장은 30~50대 남성(아저씨)들의 전용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야구장을 찾는 주요 고객은 젊은 여성이다. 프로야구 예매사이트인 티켓링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관중은 40% 이상으로, 그중 절반 이상이 20대다.
결국 영화관과 같이 젊은 여성들의 놀이공간으로서 완전히 입지를 굳힌 셈이다.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나 가족나들이로도 인기다. 반면 중년 남성끼리 야구장을 찾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야구장에 젊은 여성스포츠팬이 늘어나면서 관람(응원)문화도 젊은 감각으로 바뀌었다. ‘치맥(치킨과 맥주)’은 필수가 됐고, ‘삼겹살존’과 ‘그린존’이 새롭게 생겼다. 또 키스타임, 댄스타임 등 다양한 경품을 내건 이벤트도 풍성하다.
그러나 여성들의 적극적인 스포츠 참여는 그렇게 뿌리가 깊지 않다. 본격적인 프로스포츠시대를 연 80년대는 남성이 주류였다. 여성의 스포츠 참여라고 해봐야 치어리더, 라운드걸, 스피드걸, 배트걸 등 성을 상품화한 마케팅이 고작이었다.
스포츠평론가 신명철씨는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는 사회활동과 정비례한다”며 “여성들의 사회생활 증가는 비주류에서 주류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또 “아직까지 여성들의 사회생활 참여는 남성에 비해 부족하다”며 “국내 스포츠의 양·질적인 균형발전을 위해 여성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