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백수생활 ‘암흑터널’ 경험… ‘천하무적 야구단’ 감독으로 재기
지난 2009년 KBS 2TV를 통해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은 ‘놓치고’ ‘빠뜨리고’ ‘흘리기’의 대명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설픈 오합지졸 야구단이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는 달랐다. 이제는 웬만한 팀을 만나도 밀리지 않는다.
방송 종영 후에도 꾸준히 이어온 훈련 덕이다. 이들의 숨은 조력자는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투수 출신 이경필(39)이다. 그는 2009년부터 ‘천하무적 야구단’의 감독을 맡으며 이들을 지도, 오합지졸 야구단을 수준급 동호인 야구단으로 끌어올렸다.
이경필은 ‘천하무적 야구단’을 계기로 방송에 데뷔했다. 27년 동안 야구밖에 몰랐던 그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그의 진지한 성격과 예능프로그램은 물과 기름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웃으며 야구를 해 본 일이 없던 이경필은 예능프로그램의 특성을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만둘 생각도 수백 번이나 했다. 그럴 때마다 주문을 외웠다. “프로야구선수를 대표해 이 자리에 섰다.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버리기 시작했다.
운도 따랐다. 당시 ‘천하무적 야구단’은 인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덕분에 이경필의 주가도 덩달아 폭등했다. 폭등하는 주가를 타고 SBS ESPN 야구해설위원 자리도 꿰찼다. 그러나 ‘천하무적 야구단’과 병행하기엔 쉽지 않았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성격과도 맞지 않았다. 완벽하지 못할 바에는 한 가지 일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결국 방송해설은 중도에 하차했다. 사회생활 경험이 전혀 없던 이경필로서는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손발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주말·휴일을 반납한 지는 오래다. 1분 1초도 소중하다. JTBC와 IPSN 스포츠채널 야구해설위원, 스포츠 조명 납품 업체 머스코풍산(유) 영업지원팀 이사, 대리운전회사 대표, 야구아카데미 원장 등 명함만 다섯 개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야구 꿈나무를 육성하면서 좋아하는 방송 일까지 하고 있어 피곤한 줄도 모른다. 월급의 소중함도 처음 알았다. 억대 연봉 투수였던 그가 첫 봉급을 받았을 때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2008년 은퇴 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은퇴 전에는 야구계를 떠나면 무슨 일이든 잘할 것만 같았는데 막상 은퇴 후에는 백수 신세였다.
마음만 앞세워 건설회사에 취업도 해봤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의지와 상관없이 긴 암흑 터널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좋은 공부였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누구나 한 번은 은퇴를 한다.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성공한 ‘인생 이모작’은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끄럽지만 내가 ‘성공 이모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