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가 국민 앞에 드린 약속, 서울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제 중앙정부와 국회가 답할 차례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서울시민여러분!
저는 오늘 시대와 시민의 요구 앞에 엄중한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천만 서울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서울시장으로서, 대승적 차원에서 힘겨운 결단을 했습니다.
0~5세 우리 아이들 무상보육을 위해 서울시가 지방채를 발행하겠습니다. 올 한해, 서울시의 자치구가 부담해야 할 몫까지도 서울시가 책임지겠습니다. 단, 무상보육을 위한 지방채 발행은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돼야만 합니다. 더 이상 이렇게 지방 재정을 뿌리채 흔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결정은,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군 무상보육 논쟁 속에서 과연 서울시의 주인인 천만 시민 여러분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오로지 시민 여러분만 기준으로 놓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과입니다.
지난 2011년 10월, 저는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복지특별시장이 되겠습니다"는 약속과 함께 서울특별시장에 취임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밥 굶는 사람 없게 하겠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차디찬 냉방에서 자는 사람 없게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서울시민복지기준선 제정, 희망온돌사업, 공공의료의 강화, 장애인과 노인복지의 확장, 국공립어린이집 증설 등의 복지정책을 통해 복지가 시혜가 아니라, 당당한 시민의 권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그 이후, 우리 사회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보편적 복지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약속하신 무상보육도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0세 ~5세 전면국가 책임이라는 대통령님의 약속, 참 옳았습니다.
영유아 보육법 개정을 약속한 국회도 참 시의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의 약속, 서울시도 최선을 다 해서 함께 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재정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0~2세까지 전계층 무상보육을 시작하면서, 이미 지방재정엔 위기가 왔습니다. 서울시만이 아니라 전 지자체가 이구동성으로 재정 위기를 이야기하자, 지난 정부는 "보육제도 운영에 따라 지자체의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인수위 시절, "보육 사업과 같은 전국단위의 사업은 중앙정부에서 책임지는게 맞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정책의 추진은 바로 예산입니다. 이것을 잘 아시는 대통령과 중앙 정부는 정책과 재정, 두 가지 모두를 약속하셨습니다. 서울시는 그 약속을 천금같이 믿고 예산 편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앙 정부가 재정을 책임진다는 약속을 깨고, 서울시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서울시 80%를, 중앙 정부는 20% 만 부담하겠다는 것을 통보했습니다. 지난해 이미 무상보육으로 재정 위기를 맞았던 서울시에, 그보다 21만명의 돌볼 아동이 많아지고 3708억원의 부담이 더 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올해 무상보육이 전계층으로 확대되면서 늘어난 21만명의 아이들은 물론 서울시에서만 총 43만명의 아이들의 권리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시민여러분, 국회와 정부가 일방적으로 약속하고 시행한 정책, 그래도 서울시는 함께 하겠습니다. 다만 80%는 어려우니 60%만 부담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야도 영유아 보육법을 개정하면서, 만장일치로 합의한 내용입니다.
이 난국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동안 서울시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대통령께 건의도 드리고, 국회의원도 만나고, 장관도 만났습니다. 청와대, 여의도, 그 어디로든 달려갔습니다. 언론에 호소도 하고, 시민 홍보도 펼쳤습니다. 관계부처와 직접 머리를 맞대고 간곡히 요청하고, 호소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엄마 아빠의 애타는 마음,
그것이 바로 서울시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어려운 사정을 알렸음에도 도대체 귀를 안기울이니, 서울시가 가진 매체에 그 사연을 실어 시민들에게 알리고 국회와 정부에 다시 한번 호소한 것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중앙정부의 외면과 정치권의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정부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재부장관은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무상보육은 결코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이 키우는 일, 우리 아이 돌보는 일이 어찌 정치적 논쟁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고발하고, 그것을 선거운동이라 공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치적인 억지이고 무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돈이 없어 쩔쩔 매고, 추경은커녕 감추경이라도 해야 하는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면서 추경하면 돈 주겠다는 중앙정부의 태도에 서울시는 커다란 절망의 벽을 느꼈습니다. 서울시가 이 정도인데, 말도 못 한 채 끙끙 앓고 있는 다른 시,도 지자체들의 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시민여러분, 서울시는 어렵고 힘들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했습니다. 중앙정부가 국민 앞에 드린 약속, 서울시가 책임지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해맑은 미래를 놓고, 더 이상 수수방관하고 있는 중앙정부를 기다릴 수 만은 없었습니다.
서울시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 번 허리띠를 졸라매겠습니다.서울시가 지방채를 발행하겠습니다. 올 한해 서울시의 자치구가 부담해야 할 몫까지 서울시가 책임지겠습니다. 서울시민의 빚을 줄이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뛰어온 서울시가 다시 새로운 빚을 짊어져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희망을 지키고, 미래를 키우기 위한 절박한 선택입니다. 여유가 있어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올해 서울시의 재정 상황은 경기침체로 인해 약 4,000억원의 세수결손이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상보육비 부족분 3,708억원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재정상황이 어렵다 해도 서울시는 시민의 기대와 시민의 희망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치구의 몫까지 껴안는 서울시의 대승적 결단을
중앙 정부가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중앙정부가 국민 앞에 드렸던 무상보육 약속, 서울시가 이어나가겠습니다. 다만, 대통령님과 국회의원님들께 마지막으로 호소 드립니다.
무상보육은 올 한 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복지가 되어야만 합니다. 올해는 이렇게 넘어가지만, 지금처럼 열악한 지방 재정으로서는
내년엔 정말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무상보육 재정문제는 서울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경기도도, 인천시도,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재정 부족으로 고통받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건강한 지방 재정을 위해서, 중앙 정부가 지금처럼 밀어붙이기식 재정 편성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고, 민주주의의 꽃인 지방자치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일입니다.
무상보육은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무상 보육은 우리의 공동체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비젼과 방향, 원칙과 철학의 문제입니다. 그 핵심은 바로 지속가능성입니다.
서울시가 어렵고 힘든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천만 시민을 위한 판단이고, 무상보육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절박한 선택입니다.
이제 중앙 정부와 국회가 답 할 차례입니다. 중앙 정부가 무상보육 정책과 재정 모두 책임지겠다는 약속 꼭 지켜주십시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여야의원의 만장일치로 통과하고도, 벌써 10개월째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영유아 보육법’
꼭 통과시켜주십시오. 그 길만이 무상보육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속가능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무상보육의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 될 것입니다.
부디 지금부터라도, 중앙 정부와 국회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랍니다. 중앙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위한 현명한 판단을 한다면, 서울시는 전력을 다해 그 길을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희망과 미래를 위해 이제 정부와 국회가 답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