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심판이라도 역할은 종목마다 천차만별이다. 경기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반칙을 판별, 벌점을 주거나 경고ㆍ퇴장을 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심판의 역할과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 심판 본연의 업무를 넘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심판의 몫이 됐다. 이제 심판은 단순히 경기를 중재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더 재미있게 연출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안고 있다.
4명의 심판(1주심ㆍ3루심)으로 구성된 야구는 주심의 스트라이크존 폭에 따라 경기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야구 심판은 스트라이크존으로 경기 흐름을 조율한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우는 경기나 이미 승패가 갈린 상황에서는 스트라이크존을 넓혀 경기 흐름을 빠르게 끌고 간다.
그러나 스트라이크존은 늘 시비의 원천이었다. 승부처에서는 선수는 물론 관중까지 볼 하나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 최말례 한국사회인야구심판위원회장은 “스트라이크존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TV나 관중석에서 보는 각도로는 정확한 스트라이크를 판별할 수 없다. 가장 가까이에서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은 심판뿐”이라고 주장했다.
축구는 4명의 심판(1주심ㆍ2부심ㆍ1대기심)으로 구성된다. 주심은 파울 허용 범위를 통해 다이내믹한 경기를 이끌어낸다. 공격권을 가진 선수가 파울을 당하더라도 유리한 상황이라면 휘슬을 늦게 불거나 불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원칙과 관용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FIFA의 룰 개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라는 의견과 ‘상황에 따라 관용을 배풀 수도 있다’라는 의견이 충돌한다.
지난 5월 K그리 클래식 포항과 부산의 경기에서는 부산의 ‘꽃미남’ 윤상혁이 선제골을 넣은 후 부적세레모니를 선보였다 경고를 받았고, 전북 이승기는 골을 넣은 후 유니폼을 잠깐 뒤집어 썼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준희 KBS축구해설위원은 “FIFA 규정은 분명 경고 조치가 맞다. 그러나 K리그 클래식의 흥행을 위해 다소의 아량이 발휘되는 것도 조금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네티즌은 “원칙은 원칙이다. 경기 진행 미숙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심판 책임인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옳다”라는 주장이다.
태권도, 유도 등 무도 종목은 심판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심판 임의로 줄 수 있는 주의·경고 등 벌점은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 벌점을 주느냐가 경기 결과를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벌점을 줘야 하는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으면 공정성 논란에 휩쓸릴 수 있다. 실제로 2012 런던올림픽 유도 종목에서는 심판의 공정성이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 속출, 선수들의 희비가 엇걸렸다.
체조(기계·리듬), 다이빙, 피겨스케이팅 등 연기종목의 심판은 채점요원이다. 기계체조는 6명의 심판이 채점, 최고점과 최저점을 뺀 4명의 평균점수가 공식기록이다. 리듬제조(개인전)는 주임심판 1명, 심판원 4명, 선심 2명, 시계원 1명으로 구성되지만 대부분 채점요원일 뿐 경기 진행과는 무관하다.
반면 골프는 심판 없이 플레이하는 유일한 종목이다. 경기위원이 있지만 선수들의 플레이에 직접적인 관여는 하지 않는다. 선수 스스로 스코어를 적어내고 선수와 갤러리가 상대 선수들의 심판이 된다.
유응열 전 SBS골프채널 해설위원은 “심판이 없는 만큼 선수 개개인의 매너와 에티켓이 중요하다”며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룰을 어겼을 때는 스스로 위반 사실을 알리고 벌점을 받는 것이 골프 본연의 정신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