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스포츠]‘X게임’에 美치다

입력 2014-02-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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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클라이밍 등 97개 동호회 4300명 활동… 마니아 스포츠로 큰 인기

“헉! 헉! 아~악!”

거친 호흡을 몰아쉬던 남성이 괴성을 질렀다. 남성의 목소리엔 절박함이 역력하다. 수십 미터 밑에선 남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숨죽여 바라보는 동료들이 있다.

지난 2일 설 연휴 마지막 날 아침, 강원 춘천의 구곡폭포 앞에 모인 아이스클라이밍 동호인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궂은 날씨를 뚫고 수직으로 내리꽂은 빙벽을 힙겹게 오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함이 느껴진다.

가족·친지와 함께 모처럼 만의 연휴를 만끽해야 할 시간이지만 이들이 마주한 것은 가족·친지가 아닌 차가운 빙벽이다. 이들은 왜 설 연휴마저 반납한 채 깎아지른 빙벽을 오르고 있을까.

경기 용인에 사는 아이스클라이밍 동호인 양형석(46·천지산악회)씨는 “다른 스포츠처럼 속이거나 훔치는 일이 없어 정직한 운동이다. 자연을 무대로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기와의 승부를 배운다. 싸움에서 승리했을 땐 온몸으로 짜릿함을 느낀다. 그 희열이 무시무시한 빙벽 앞에 다시 서게 하는 원동력이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극한의 상황과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경기를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라 부른다. X게임으로도 통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는 경기 중 극한의 공포심과 부상, 심지어 생명의 위험을 느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스트림 스포츠가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박성희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교수는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관람 스포츠에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등산·트레킹 등 참여 스포츠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극소수 사람들이 차별화된 짜릿함을 경험하기 위해 익스트림 스포츠를 시작했다”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일반 스포츠와 차별화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동력은 친환경이다. 특정 스포츠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연이나 도시 시설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 등 기존 스포츠는 정형화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자연환경을 훼손, 환경론자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까지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말 자체가 낯설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체육백서에 따르면 국내 익스트림 스포츠(X게임)는 동호회 93개, 회원 수는 4308명으로 9982개 클럽에서 56만4139명이 참여하는 축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반면 미국·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익스트림 스포츠가 생활의 일부다. 지난 1993년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 ESPN은 X게임 공식대회를 개최했고, 1997년부터 동계 종목만 모아 겨울 X게임을 시작했다. ESPN은 이 대회를 통해 한해 7000만 달러(743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공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관광산업과 연계해 국가 중추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웨스턴케이프의 플레튼버그 만과 오이텐하흐를 연결하는 블로우크란스 다리의 번지점프대다. 그밖에도 암벽과 산, 강 등 자연환경을 이용한 암벽 등반,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등 여행과 익스트림 스포츠가 자연스럽게 연계되도록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범위가 모호해졌다. 산악자전거(MTB), 자전거 스턴트(BMX), 스케이트보드, 인라인스케이트(롤러블레이드), (맨발)수상스키, 아이스클라이밍, 스포츠클라이밍, 아이스다이빙, 스카이서핑, 번지점프, 스노보드, 스트리트 루지(누워서 달리는 썰매의 일종), 웨이크보드(트릭스키의 일종) 등 수십 종목이 있지만, 스노보드는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에 채택됐고, 아이스클라이밍과 스포츠클라이밍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 거론되고 있다.

결국 소수 마니아들에 의해 전개됐던 익스트림 스포츠가 거대 산업화에 흡수,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본래 정신과 콘셉트를 잃게 된다는 우려와 거대 산업화로 인한 시장성장 기대감이다.

국내에도 신종 익스트림 스포츠가 계속해서 소개, 젊은층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안전은 뒤로 한 채 오로지 흥행을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박성희 교수는 “동전의 양면성이다. 선수들의 안전 제반 마련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안전이라는 요소가 강조될수록 익스트림 스포츠로서의 차별성은 떨어진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생존 원동력인 골수팬 확보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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