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9월, SBS 리얼리티프로그램 ‘짝’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여성 출연자를 고소했다. 과거 쇼핑몰 운영, 성인방송 출연 사실이 문제가 됐다. 이 여성은 ‘짝’의 제작의도를 훼손하고 함께 출연한 사람들의 선량한 의도를 방해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SBS는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고심을 거듭했고, 이 여성 출연자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과 방송 결방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이 출연자를 고소한다는 것은 제 살을 깎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BS의 결정은 단호했다. 앞서 쇼핑몰, 사업 홍보 목적, 애인 유무 등 다양한 형태의 논란이 제기되며 프로그램의 ‘진정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수의 패러디를 낳을 만큼 독창성이 강했던 ‘짝’에 대한 SBS의 자부심은 컸고, 마니아층 시청자들의 수요는 강렬했다. 한 여성 출연자의 사망 전까지는...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출연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프로그램 ‘짝’을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짝’이 폐지됐다. 지난 2011년 3월, 방송가에 신선한 바람을 불고 온지 3년째 되는 해였다. ‘정글의 법칙’과 함께 SBS 예능국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짝’의 폐지는 방송가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방송사도 피해자 아닌가”라는 볼 멘 소리도 들려왔다. 분명한 건 ‘짝’ 폐지는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을 다시 돌아보는 반환점이 됐다.
기자는 지난해 ‘짝’ 출연진과 함께 한 만찬 자리에서 애정촌 카메라를 경험했다. 만찬 자리를 취재하기 위해 실제 ‘짝’의 카메라맨이 우리의 대화를 담아갔다. 카메라가 다가오자 자연스런 대화에도 온 신경이 카메라에 쏠렸다. 6박7일의 애정촌 생활로 단련된 출연자들도 “아직도 카메라는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송을 업으로 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카메라가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런 부담감 속에 외부와 단절한 채 평생을 함께 할 짝을 찾는다.
더 큰 문제는 편집된 방송분이다. 내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방송은 나를 ‘집착’, ‘애정결핍’에 빠진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형편없는 외모의 소유자로 만들기도 한다. 애정촌에선 경험하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사실은 계약서에 명시됐고, 방송될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다.
이처럼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이 가진 폭탄은 외국에선 이미 수차례 터졌다. 2007년 독설가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 출연자는 방송 직후 권총 자살했다. 2010년에는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에 출연했던 한 출연자는 강에 투신해 숨졌다. 2011년 8월, 미국 리얼리티쇼 ‘베벌리 힐스의 주부들’ 주인공 테일러 암스트롱의 남편은 언론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외에도 ‘아메리칸 아이돌’, ‘슈퍼내니’, ‘러브 서바이벌’ 등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했다.
일반인의 방송 출연을 제한할 수는 없다. 또 개개인의 숨은 의도와 성향을 일일이 분석하기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유명세를 타기 위한 인간의 욕구는 그 어떤 형태로도 막을 수 없다. 방송의 다양성 확보에 있어서도 일반인은 훌륭한 게스트이자 방송의 주체이다. 앞으로도 일반인의 방송출연은 활발히 진행될 것이다.
강석 UTSA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트렌드: 오락과 교훈의 만남’에서 ‘펀 스타즈’, ‘어메리칸 리스토레이션’, ‘덕 다이너스티(Duck Dynasty)’를 예로 들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수용자들의 선호도가 흥미와 정보, 교훈을 주는 포맷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반성의 목소리는 방송국의 몫이다. ‘악마의 편집’ 등 시청률에 집착한 단편적인 방송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적어도 인간 최대의 가치인 ‘생명’은 지켜져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