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에서 영화 ‘허삼관 매혈기’ 촬영에 한창이라는 배우 하정우는 새까맣게 탄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3일 동안 촬영이 없다. 19회차 정도 찍었다. 배우들을 한군데 모으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허삼관 매혈기’에서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연기하며 “컷”을 외치는 하정우의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정우는 오는 23일 개봉을 앞둔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 푹 빠져 있었다. 극중 백정 돌무치에서 지리산 추설로 재탄생하는 도치를 연기한 하정우는 인터뷰 내내 직접 연기를 보여주는가 하면 특유의 4차원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자아냈다.
하정우의 연기는 선 굵게 관객들과 소통했다. 그런 그가 ‘군도’에서는 조금 힘을 뺐다. 스스로를 “웃음 담당”이라고 말한 하정우는 영화 ‘핸콕’의 윌 스미스, ‘캐리비안의 해적’ 잭 스패로우, ‘잭’ 로빈 윌리엄스 등을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개그맨 윤택의 이름도 거론됐다.
“돌무치가 수레를 끌고 오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다. 걸음걸이에 있어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를 생각하며 리듬을 줬다. 어떻게 보면 잭 스패로우보다 더 덜떨어진 캐릭터다. 돌무치를 연기하는 내내 조윤(강동원)과 대비되게 가려고 노력했다. 윤택처럼 항상 한 박자씩 늦는다. 멍한 눈빛에 있어서는 ‘12몽키즈’의 브래드 피트를 연상했다.”
물론 돌무치가 단순히 코믹한 캐릭터는 아니다. 하정우는 코믹과 진지함의 경계를 넘나들며 캐릭터를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돌무치란 인물이 동화 속에서 나오는 인물 같았으면 했다. 현실적 리얼리즘은 물론이고 영화적 판타지가 있어야 하는데 돌무치가 딱 그랬다. 극중 스무 살 설정도 영화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백정 돌무치일 때는 코믹한 모습이 많다가도 지리산 추설에 합류해 도치로 변했을 때 가족을 잃은 분노와 화를 담았다. 기본적으로 코믹한 위트를 끝까지 잃지 않으려 했다.”
하정우는 전작 ‘추격자’, ‘황해’, ‘베를린’ 등에서 보여준 무거운 캐릭터를 벗고, 코믹함으로 무장했다. 그야말로 ‘군도’의 돌무치는 하정우에게 있어 연기 변신이다.
“관객들에게 반전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미의 반전을 주고 싶었다. ‘황해’, ‘베를린’, ‘추격자’에서 묵직한 연기를 했기 때문에 가볍고 코믹적인 요소에 배치됐을 때 반전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다. 코믹은 내 담당이었다. 시원하게 나를 낮추고 ‘군도’ 형님들을 이끌고 코미디를 담당했다”
영화 촬영에 도가 튼 하정우였지만 ‘군도’는 유독 고행의 시간이었다. 7개월의 시간 동안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었고, 스킨헤드를 표현하기 위해 매일 같이 면도와 분장을 해야 했다. 폭염 속 민머리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황해’ 때보다 더 고생했다. 폭염에 며칠 촬영하니 건어물이 다 상해 냄새가 났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에 고생하고, 밤에는 모기와 싸웠다. 본드로 수염을 붙이는가 하면 매일 머리를 면도해야 했다. 말 타는 장면도 14시간 동안 촬영했다. 나중에는 허벅지에 힘을 많이 줘서 시퍼렇게 멍들어 있더라.”
하정우는 인터뷰 중 극중 탐관오리 조윤 역으로 악역에 도전한 강동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강동원이 4년 만의 복귀작이라 그런지 본인이 열심히 촬영을 준비했다. 액션, 승마 등 모든 준비를 누구보다 먼저 했다. 같이 액션을 찍으면 무술팀이랑 하는 것처럼 합이 좋았다. 강동원은 외모와 다르게 상남자 스타일이다. 유일하게 말을 무서워하지 않는 배우가 강동원이었다. 맛집을 잘 안다는 것과 술을 잘 먹는 것은 반전 매력이다.”
하정우는 ‘군도’의 완성본을 지난 14일 진행된 언론시사 당시 확인했다. 하정우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생각보다 재밌게 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경쾌한 오락 영화다. 의도한대로 잘나왔다. 드라마적 대서사시를 기대했다면 간극을 느낄 수도 있지만 철저히 액션 활극으로 생각하고 보신다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락 영화로서 가치와 미덕은 있다. 러닝 타임이 2시간 17분인데 짧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