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꿈나무들이 어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한국 리틀 야구 대표팀(12세 이하)의 이야기다. 리틀리그 야구 월드시리즈 결승전이 열린 25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펜실베니아 주 윌리엄스포트는 한국인의 축제였다. 우승 후보 일본을 꺾고 결승에 오른 한국은 미국 대표팀(일리노이주)마저 꺾고 1985년 이후 29년 만에 월드시리즈를 제패했기 때문이다.
특히 에이스 황재영은 일본과의 준결승에 이어 미국전에서도 선발 출전해 투타에서 완벽한 모습을 선보이며 한국 야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세계 강호들을 나란히 꺾었다는 점에서 기쁨이 더했다. 올림픽ㆍ아시안게임ㆍ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굵직한 국제 대회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피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양국이 가진 인프라와 풍족한 환경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2세 이하 어린 선수들이지만 섬세한 플레이와 대담한 승부근성은 프로 선수도 부럽지 않았다. 박종욱 감독과 선수ㆍ가족ㆍ관계자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귀중한 성과다.
그러나 한국 리틀 야구 대표팀의 영광과 환희 뒤에는 무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다. “과연 이들이 프로 무대에서도 미국과 일본 선수들을 압도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마주하는 순간 모두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 물음에 명쾌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너무나 많다. 우선 프로 등용문인 고교야구 인프라 부족이다. 국내 유소년 야구팀은 약 250여개(초등학교 100여개ㆍ리틀 야구팀 150여개)로 전국대회가 열리는 지방 도시에는 선수ㆍ가족ㆍ관계자 등 약 1만 여명의 모여 대성황을 이룬다.
프로야구는 내년 시즌부터 경기 수원을 연고로 하는 신생팀 KT 위즈가 정규 리그에 합류, 10구단 체제로 운영된다. 야구장 환경도 크게 개선돼서 대부분 구장이 최신 시설을 갖췄다. 경기력ㆍ환경ㆍ흥행 면에서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고교야구다. 국내 고교야구는 총 54팀으로 일본의 4030팀(17만312명)과 비교해 75배나 적다. 아마 야구의 성지도 없다. 지난 2006년 서울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이 철거되면서 대체 구장으로 약속했던 고척돔구장은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전용구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열린 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는 춘천야구장, 봉황대기는 군산명월야구장과 포항야구장, 황금사자기와 청룡기는 목동야구장과 잠실야구장에서 각각 분산 개최됐다. 대부분 프로야구 경기장이다. 사실상 아마추어 전용구장은 없는 셈이다.
고교야구 대회장을 찾는 사람도 없다. 대회장엔 선수가족과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일반 관중들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관심 자체가 없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고교야구 인기는 꾸준히 하락, 이제는 무관심 종목으로 전락했다. 가장 탄탄한 기반을 갖춰야할 고교야구가 가장 빈약한 체제에서 소외받는 처지가 됐다.
그뿐이 아니다. 승리지상주의와 엘리트스포츠 집중 육성은 어린 선수들에게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대부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업과 담을 쌓기 때문에 중도 포기라도 하면 인생 낙오자로 전락하기 쉽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기본기와 바른 인성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 명의 영웅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야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좀 더 멀리 보자. 어린 꿈나무들이 프로 무대에서도 미국과 일본 선수들을 당당하게 제압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건 어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