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숱한 화제를 뿌렸다. 떡방아 씬이나 쌀보리 씬처럼 재기발랄한 연출로도 각광 받았고, 다양한 패러디와 OST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빛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극중 달팽이 커플인 배우 장나라와 장혁의 열연 덕분이다. 이 드라마는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장혁과 장나라의 12년만의 재회 때문이다. 두 사람은 SBS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찰떡궁합 호흡을 자랑한 바 있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컸고, 장혁과 장나라는 보란듯이 이전보다 더 농익고 탁월한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12일 오후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나라는 드라마의 인기를 배우 장혁의 공으로 돌렸다. 그는 “좋은 선배님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며 “우리 둘의 호흡에 점수를 준다면 만점 중의 만점이다. 만점을 뚫고 더 많은 점수를 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을 정도”라고 장혁의 연기와 호흡에 반색을 표했다.
‘명랑소녀 성공기’ 촬영 당시에는 두 주연 배우 사이에 대화 한 마디 오가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씻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촉박했던 제작 시간과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장나라는 “선배님이 가벼운 농담 한 마디 건넸던 게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얘기 한 번 나눠 본 적 없었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연기했다. 필사적인 합이었다”며 “그 와중에도 은근한 호흡이 있었다. 리허설 때 의논하지 않아도, 막상 연기를 하면 척척 진행돼서 신기할 정도였다”고 두 사람의 완벽한 연기호흡을 자랑했다. 이어서 그는 “이번에는 대화도 많이 할 수 있었고, 작품에 대해서도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촬영하면서도 상의하고 의논하면서 고쳐나가 정말 좋았다”고 나아진 제작환경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장혁은 이건 역을 맡아 다소 오버스럽고 과장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래서일까. 독특한 정신세계와 남다른 웃음소리로 화제를 모은 이건 덕분에 촬영장은 항상 화기애애하고 즐거웠다. 장나라는 “내장에 개그 신경이 있나 싶을 정도다. 혼자 두면 애드리브로 1시간도 거뜬히 연기할 수 있는 분이다”며 “처음엔 너무 웃겨서 NG가 계속 났는데, 뒤로 갈수록 다행히 장혁의 개그에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졌다”고 장혁의 연기 스타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배우 장나라에게 배우 장혁은 배울 게 많은 연기자 선배다. “연기자로서 배울 게 너무 많은 분이에요. 기본적으로 가진 게 많은 배우죠. 제가 ‘운명처럼 널 사랑해’ 끝나고 의형제를 맺자고 한 것도 선배님한테 많은 걸 배웠고, 앞으로도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같이 연기하다보면 상대 배우의 많은 게 보이는데, 선배님한테 특히 연기에 있어 많은 게 보여요. 여러모로 롤 모델이 되기 좋은 배우죠.”
촬영장에서 장혁은 장나라 인생의 멘토가 돼주기도 한다. 드라마 감독과 장혁이 인생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준다는 장나라는 “결혼적령기가 되면서 오히려 질풍노도의 시기가 된 것 같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하루 단위로 생각이 계속 바뀐다”며 “그럴 때마다 두 분은 오히려 내게 여유를 가지라고 조언해주신다. 연기를 좀 더 열심히 해도 된다고 격려해준다. 결혼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혼과 연기에 있어 명확하진 않지만, 나름의 계획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허황된 계획이지만, 37세까지는 미혼일 때 할 수 있는 연기를 최대한 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이후에 결혼해서 기혼자만이 가능한 연기를 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장나라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며 ‘다모’의 하지원과 ‘히트’의 고현정 역을 탐냈다. 그는 “두 선배님의 에너지가 정말 좋다”며 “‘추노’의 대길이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다. 펄떡펄떡 뛰는 살아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나라는 본래 음악으로 연예계에 입문한 가수다. 음반 활동 계획을 묻자 그는 “심신이 지쳤을 때 몸이 컨트롤을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걸 음반을 내면서 깨닫게 됐다”며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마이크를 들었더니 손이 덜덜 떨리면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 때 몸으로 발현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된 거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수 활동을 내려놨다”고 한동안 가수 활동을 하지 않았던 연유에 대해 설명했다.
항상 음악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장나라는 “촬영하다가도 힘들 때 노래를 흥얼거리며 힘을 낸다. 노래하는 건 너무 즐겁고 좋다”며 “이번에 좀 쉬면서,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연습하고 레슨을 받아 다시 해보려 한다”고 음반 활동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재미난 걸 준비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인터넷과 각종 기기가 발달하면서 모든 주기가 짧아졌어요. 그러면서 무언가를 지켜보는 것도, 누군가에게 시선을 주는 시간도 짧아진 것 같아요. 대중이 연예인을 관찰하고 방관하는 느낌으로, 조금 더 넉넉하게 바라봐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저를 그렇게 봐주시면 연기나 음악 외에 정말 많은 걸 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장나라는 앞으로도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많이 시도해볼 생각이다. 뭐가 됐든 넉넉하게 바라봐주는 대중의 여유 한 톨이 간절해 보인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는 잘 해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