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경쟁질서 확립, 진실 규명 필요”
삼성전자와 LG전자 간 분쟁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삼성전자가 세탁기 고의 파손 혐의로 LG전자 HA사업본부 조성진 사장 등을 검찰에 수사의뢰하면서다. 양사는 그간 기술 유출 등을 놓고 법정공방을 벌이는 등 크고 작은 분쟁을 지속해 왔지만 경쟁업체 최고위급 임원을 상대로 검찰 수사의뢰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14일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4’ 기간 중 자사 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했다며 LG전자의 조 사장을 비롯해 세탁기 담당 조모 임원, 신원불상 임직원 등을 업무방해, 재물손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의뢰했다.
삼성전자는 IFA 기간 중 베를린 자툰 유로파센터 매장에서 ‘크리스털 블루 세탁기’가 파손돼 다른 매장을 점검하던 중 자툰 슈티클리츠 매장의 세탁기 3대가 동일한 형태로 망가진 사실을 확인, 현지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LG전자 임직원이 자사의 크리스털 블루 세탁기 도어 연결부를 고의로 파손하는 장면을 CCTV로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슈티글리츠 매장 측과 CCTV를 확인한 결과 양복 차림의 동양인 남자 여러 명 중 한 명이 세탁기를 파손시키고 현장을 떠나는 장면이 포착됐다.
삼성전자가 경쟁사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뢰라는 극단 조치를 내린 데는 LG전자의 해명이 삼성전자 제품의 품질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삼성 세탁기 고의 파손 사건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4일 해명자료를 통해 “경쟁사 제품을 폄하할 목적으로 몰래 경쟁사 제품을 훼손시키려 했다면 연구원들이 갈 이유가 없었다”며 “그런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보다 계획적으로 발각되지 않을 사람과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LG전자는 “어떤 회사든 해외출장 시 현지 매장을 방문해 경쟁사 제품의 사용환경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일반적 활동”이라며 “이번에도 출장 간 연구원 중 일부가 양판점을 방문해 제품을 테스트한 사실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LG전자가 “테스트 과정에서 삼성전자 제품만 유독 손상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사건의 원인을 삼성전자 제품의 품질 문제로 돌리면서 이번 사태는 검찰 수사의뢰라는 극한 상황까지 치닫게 됐다. 또한 LG전자의 해명처럼 경쟁사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일은 일반적이지만 매장에 진열된 판매제품을 대상으로 사용환경을 테스트하고 파손한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CCTV를 통해 제품을 파손한 당사자가 LG전자 사장이란 점을 확인했지만 국가적 위신 등을 고려해 국내에 돌아와 사건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사법기관의 판단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며 “아울러 기업 간의 올바른 경쟁질서 확립 차원에서도 진실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검찰 수사의뢰에 대해 LG전자는 지난번의 해명자료와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LG전자는 “해당 현지 매장은 일반 소비자들 누구든지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살펴 볼 수 있는 양판점이었고 당시 자툰 슈티글리츠 매장에서 세탁기를 비롯한 국내외 회사 백색가전 제품들의 사용환경을 두루 살펴보았다”면서 “여러 회사 제품을 똑같이 살펴보고 나왔으나 해당 매장 측에서는 당사 임직원 방문 후 지금까지 당사에 어떠한 요구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LG전자는 “이번 일이 글로벌 세탁기 1위 업체인 당사에 대한 흠집 내기가 아니기를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선의의 경쟁과 지속적인 품질 향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욱 신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앞으로 검찰조사에 적극 협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양사는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냉장고 용량, 에어컨 시장점유율 등 각 사의 전략제품 등을 놓고 치열한 설전 및 법적 공방을 벌여왔다.
지난 2012년 5월 검찰이 삼성디스플레이의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LG디스플레이 본사 압수수색 및 LG 임직원 등 11명 불구속 기소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양사는 지난해 9월까지 치열한 소송전을 벌였다. 또 같은해 8월 삼성전자가 자사와 LG전자의 냉장고 용량을 실험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양사는 약 1년간 수백원원의 쌍방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공방을 이어갔고, 지난해 3월에는 에어컨 시장점유율을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