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올해 전합선고 11건 중 5건이 만장일치… "소수의견 실종" 지적 이어져

입력 2015-08-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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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의욕이 앞서다 보니 무리하게 만장일치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 13대 0이 말이 되나. (대형로펌 변호사)"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대법관들이 의견을 일치시켜 논쟁을 끝낼 필요가 있다. 만장일치 판결이 갑자기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니다.(현직 부장판사)"

최근 대법원이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에 대해 연달아 대법관 13명의 만장일치로 판결을 선고한 데 대해 법조계 의견이 분분하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전원합의체에 올라갔는데도 소수의견이 없다는 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는 반면, 대법원은 자연스럽게 의견이 일치된 것일 뿐, 확대해석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 올해 '전합 선고' 11건… 5건이 만장일치

올해 대법원이 선고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총 11건이다. 4월 2건, 5월 3건, 7월 6건이 선고됐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5건이 만장일치로 결론이 났다. 반면 지난해의 경우 전원합의체 선고 사건은 총 13건이었고, 반대의견 없이 결론이 난 사건은 3건에 그쳤다. 그나마 이 중 2건은 공무원 퇴직연금과 앞으로 받게 될 퇴직급여가 재산분할 대상인 지에 관해 따로 판단을 내놓은 것이어서 올해만큼 만장일치로 결론을 낸 사건은 많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 13대 0으로 결론이 내려진 사건 5건 중 4건이 7월에 몰리면서, 소수의견 실종에 대한 법조계 '체감지수'는 훨씬 올라갔다. 사건 내용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만 한 사건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2012년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는 판결과 검찰의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방식을 제한한 결정은 7월 16일에 나왔고, 일주일 뒤에는 변호사업계는 물론 법조계 전반을 뒤흔든 형사 성공보수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같은 날 선고된 만장일치 전합 판결은 뇌물 수수 사건에서 피고인이 받은 금품 액수가 형사판결에 따라 추징된 경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릴 수 없다고 본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 "무효 소급효 제한은 월권", "선언만 있고 법리는 없다" 비판도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최근 전원합의체를 통해 만장일치 결론을 내리는 이유에 대해 '정책법원'으로서 위상을 의식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대법원은 최근 사건 당사자를 승복시키는 역할은 1,2심 법원과 별도의 3심 법원이 담당하고, 대법관들은 사회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는 선례를 남기도록 하는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상고법원을 도입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올 가을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만장일치 판결'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상대적으로 치밀한 법리구성에는 취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7월에 선고된 형사 성공보수 무효 판결과 관련해서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선언만 있고 법리는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판결 선고일을 기준으로 "장래에 체결되는 계약만 무효"라고 판시한 대목은 주어진 대법원이 사실상 입법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 로스쿨의 윤진수 교수는 법조 전문지인 '법률신문'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원래 재판이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결의 장래적 효력만을 인정하는 것은 사법의 본질과는 맞지 않다"며 "국회가 아닌 법원은 이러한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대형로펌의 A변호사도 "그냥 무효라고만 판결하면 기존에 이미 형사 성공보수 약정 계약을 체결했던 당사자들이 돈을 돌려달라는 줄소송이 이어질 것을 우려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민법상 무효는 그냥 무효이지, 앞으로만 무효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대법관 13명이 의견이 일치됐다면 그만큼 법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약하다 보니 비판을 받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2월 간통죄 처벌 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던 사례와 대비된다. 헌재는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았으니 형사보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자 선고를 미루고 있다가 이를 제한하는 취지의 입법이 이뤄진 후에 선고일을 잡아 위헌결정을 내렸다. '법리적인 판단에 따라 선고를 하되, 사회적 파장에 대한 대책 마련은 국회의 몫'이라고 본 것이다.

■ "대법관 13명이 '일반조항'으로 사건 해결"… '사법적극주의' 강화 현상

성공보수 판결에서 대법원이 법적 근거로 민법 103조를 내세운 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조문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판사는 "소위 '전가의 보도'로 불리는 민법 103조 위반을 근거로 판결을 내리는 것은 가급적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꼭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대법관들이 치밀하게 법논리를 구성하지 않고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처럼 추상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선례를 남기면 일선 재판부에서도 막연한 기준 때문에 재판이 쉽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대법원 근무 경험이 있는 대형로펌의 B변호사는 "103조같은 '일반조항'은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어서 정책판단을 하는 데 쓰이는 조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민법 103조를 판단 근거로 삼을 경우 사법보다는 입법에 가까운 결론이 나오게 된다"며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주장하면서 정책법원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B 변호사는 또 "최근 대법원이 13대 0으로 결론내는 사건들은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법한 내용인데, 대법원이 하나의 의견을 내다 보니 '그만큼 명백했나?'라는 반문 내지 반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 '소수의견 실종'에 음모론까지 등장… '원세훈 사건',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요건 강화' 결정도 도마에

이밖에 원세훈 사건의 경우 새로 내세울 법리도 명확하지 않고, 소수의견도 없는데 대법관 전원의 합의로 결론을 내린 이유를 놓고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통상 대법원 상고심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3개의 소부에서 심리를 진행한다. 그러나 소부 소속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선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안인 경우 등의 사유가 있을 때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처리한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대법관들이 의견을 일치시킨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현직 부장판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 간을 독립된 주체로 재판해온 자긍심이 있는 대법관들이 13명 전원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 양심에 어긋나는 결론을 내리는 일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요건을 강화한 결정에 대해서는 검찰 측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이라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특히 이 사건 주심인 김소영 대법관이 최근 "처음에는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그 의견의 상당부분을 다수의견에 반영해 준 결과 해당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철회했다"고 말했는데, 한 현직 검사장은"소수의견을 다수의견으로 넘어오도록 했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소수의견은 그대로 남겨놓는 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미국의 경우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고 판단되면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할 때까지 선고기일을 잡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평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적"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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