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국의 프리다 칼로’ 천경자 화백이 그린 ‘미인도’입니다. 아! 정확하게 말해야겠네요. 그의 작품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그림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되시죠. 1991년으로 잠시 가볼까요.
당시 천 화백은 강렬한 색채로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하며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한 ‘스타’ 화가였습니다. 여인의 한(限)과 환상, 꿈과 고독이 그녀의 주제였죠. 이 때문에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두 번의 이혼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 누구보다 단단해진 그녀였지만 감내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옵니다.
한 날은 천 화백의 집에 시인 후배가 방문했습니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중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습니다.
“자주 가는 사우나에 선생님 그림이 걸려있어요. 잘 보고 있습니다.”
후배의 말을 들은 천 화백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미술관 아트숍에서 명화를 복사해 판 프린트이긴 했지만, 자신의 그림이 사우나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자존심이 매우 강했던 그분에게는 더 그랬습니다.
“내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는 믿을 수 없어.”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대그룹 사옥 지하에 있던 사우나로 향했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우나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그림을 한참 지켜보던 천 화백은 자신의 작품이 아님을 확신했습니다. 붓 터치부터 색감 표현, 꽃과 나비의 모양, 작품 싸인, 연도 표시까지. 모든 게 자신의 것과 달랐기 때문이죠.
“당신들이 프린트한 미인도는 내 그림이 아니다. 위작이다.”
천 화백은 그림을 갖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가 이렇게 통보했습니다. 물론 미술관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곧바로 감정위원회를 꾸려 진위를 추적했습니다. 수 개월간에 걸친 조사 끝에 미술관은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의 판정을 빌어 ‘진품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장품이 국가로 환수돼 소장 경로가 확실하다는 것도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천 화백은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 씨가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달력 그림을 섞어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자백한 겁니다. 그녀의 요청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원에서도 작품을 감정했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법원도 ‘판단 불가’ 판정을 내리며 한발 물러섰죠.
“내 작품은 혼을 넣어 만든 내 핏줄이다. 내가 낳은 자식을 몰라보겠는가.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하는 풍토에 분노한다.”
충격을 받은 천 화백은 이런 말을 남기며 붓을 놓았습니다. 한국예술원에는 회원직 사퇴서를 제출했죠. 이 과정에서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결국 천 화백은 93점의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1998년 딸이 사는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로는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미술계 최대의 스캔들로 꼽히는 ‘미인도 위작 논란’의 내용입니다.
깊은 상처를 안고 미술계를 떠난 천 화백이 지난 8월 숨을 거뒀습니다. ‘미인도 위작’의 진실도 함께 땅에 묻혔죠.
그녀의 사망 소식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또 하나의 거대한 별이 발자취만 남기고 떠나가는 구나”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진실을 가릴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지만 그녀의 예술혼은 영원히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