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화제의 중심은 단연 김하늘(28ㆍ하이트진로)이다. 일본 현지 기자들 사이에서 솔솔 피어나는 김하늘의 이야기가 그것을 입증한다. 확실한 건 그를 둘러싼 이야깃거리가 참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88년생 동갑내기 이보미(28ㆍ혼마골프)와의 맞수 관계 성립부터 미니스커트 매치, 건국대 동창(골프지도전공)이라는 점, 우승 당시 사용 퍼터와 부모님에 얽힌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더 흥미로운 건 그의 성적에 따른 일본 기자들의 반응이다. 김하늘은 올 시즌 JLPGA 투어 5개 대회에 출전해 악사 레이디스 우승 포함 톱10에 4차례 진입(톱10 피니시율 80%), 메르세데스랭킹(올해의 선수) 1위(113포인트), 상금순위 2위(2641만666엔ㆍ약 2억7000만원), 평균타수 3위(70.9412타)에 올라있다. 지난해 데뷔 후 18개 대회 만에 톱10에 든 것과 비교하면 눈부신 성적이다.
특히 김하늘은 시즌 두 번째 대회 PRGR 레이디스컵부터 악사 레이디스까지 3개 대회(3주) 연속 1ㆍ2라운드 선두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하늘을 응원하기 위해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도 부쩍 늘었다. 스타 부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JLPGA 투어로선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보미와의 라이벌 매치로 흥행을 이끌었고, JLPGA 투어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도 했다.
김하늘에 대한 일본 언론의 관심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주 연속 1ㆍ2라운드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날 역전패를 당한 직후에는 ‘김하늘은 왜 우승을 하지 못할까’를 주제로 한 분석기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쏟아졌다.
사실 일본 현지 기자들 사이에선 지난해 김하늘의 JLPGA 투어 데뷔 자체가 이슈였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이 이어지면서 ‘그의 성적은 성격과 관련이 있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정적 기복이 심해 일본 투어(코스)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닛칸 겐다이(日刊 現代)는 지난달 저널리스트 다치가와 마사키(太刀川正樹)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하늘의 성격과 올 시즌 성적을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다치가와 씨는 이 기사에서 “김하늘은 결단력이 좋고 남성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감정에 기복이 있어서 스코어에 미묘한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나름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하지만 기자는 다치가와 씨와 정반대의 의견이다. 다치가와 씨의 분석대로라면 김하늘은 세계 최강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2년 연속 상금왕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의 감정 기복은 오히려 ‘패배를 모르는 선수’로 만들었다고 본다.
야하마 레이디스 오픈 우승 직후 일본의 각 언론사는 지난해 9월 먼싱웨어 레이디스 도카이 클래식에서의 첫 우승과 비교하며 흥미로운 기사를 적어냈다. 우승 당시 사용했던 오디세이 일자형 퍼터를 다시 사용했다는 점과 두 차례 모두 부모님이 귀국한 직후 우승을 이뤘다는 점이 닮았다는 것이다. 올 시즌 지긋지긋한 징크스를 깨기 위해 김하늘 스스로가 선택한 환경이었다.
기복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단지 그 기복을 제대로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냐가 관건이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신체리듬과 감정 기복에 잘 대응해온 선수다. KLPGA 투어에서 보낸 8년도 숱한 기복 속에서 굴하지 않았다. 데뷔 5년 만에 상금왕에 올랐고, 지옥과도 같았던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최고 선수 반열에 섰다.
김하늘은 천재형보다 노력형에 가깝다. 주니어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점과 프로 2년차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점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김하늘은 KLPGA 투어 데뷔 첫해 우승 없이 상금순위 1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데뷔 2년차였던 2008년에는 3차례 우승컵을 거머쥐며 상금순위 3위로 올라섰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징크스가 많을 수 있는 성격이다. 익숙한 환경(코스)을 떠나 낯선 일본에서 보낸 지난 1년이 평온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중요한 건 모든 환경(조건)을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점이다. 숱한 역경 속에서도 자기개발에 소홀이 하지 않은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