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GS25의 PB상품(private brand products)인 ‘더 진한 커피우유’를 마셔봤습니다. 우유 팩에 그려진 캐릭터 때문에 ‘스누피 우유’로 더 잘 알려져 있죠. ‘각성 괴물이다’, ‘수전증을 체험할 것이다’, ‘이틀째 못 자고 있다’ 등 살벌한 후기가 께름칙하긴 했지만, 데스크 앞 꾸벅잠보다 무섭진 않았습니다. ‘커피도 달고 사는데 이까짓 카페인쯤이야’하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효과(?)는 만점이었습니다. 아침 내 몽롱하던 머릿속이 우유를 마신 지 30여 분도 채 안 돼 또렷해지더군요. ‘내가 어제 단잠을 잤구나’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약간의 두근거림이 있었지만, 심장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고요. 손 떨림도 없었습니다. 저에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에 샷(에스프레소)을 추가해 먹는 정도의 각성이었죠.
문제는 그 효과가 이튿날까지 계속됐다는 겁니다. 밤 10시쯤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안 오더군요. 눈을 감고 양을 수천 마리나 셌는데 하품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 그날 밤을 지새웠습니다.
저처럼 잠 부족에 시달리는 미생과 학생들에게 이 우유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식품입니다. 손 떨림, 두근거림은 어찌 됐든 1200원으로 이튿날까지 ‘뜬 눈’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봤을 때 ‘스누피 우유’는 트렌드에 역행합니다. ‘불면(不眠)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더더욱 그렇죠. 왜냐고요?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에 맞지 않거든요.
슬리포노믹스는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입니다.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수면산업을 지칭하죠.
“잠으로 무슨 돈을 번다고….” 이런 생각 하면 오산입니다. 초기 수면 산업은 침대와 침구류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피트니스밴드ㆍ수면 센서 등 정보통신(IT)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슬립테크’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CGV ‘시에스타’처럼 수면 카페를 이용하는 직장인도 늘고 있고, 수면다원검사(불면증 진단)를 받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일자리 부족한 요즘 슬리포노믹스 덕에 새로운 직종까지 생겨났는데요. 개인에게 맞춤 침구를 제안하는 ‘슬립 코디네이터’와 불면의 원인을 찾고 숙면을 돕는 ‘슬립 테라피스트’가 대표적입니다.
2,000,000,000,000원.
세계수면학회 따르면 우리나라 슬리포노믹스 규모는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1990년대부터 수면 산업에 뛰어든 미국은 20조원이나 된다고 하네요. 이웃나라 일본도 6조원이나 되고요. 한국에 덧붙여진 ‘불면 공화국(한국인 평균 수면 시간, OECD 최저인 7시간 59분)’ 불명예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스누피 우유를 마시는 건 편안하게 잠자고 싶어서예요. 역설적이죠. 토익, 면접, 자소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빨리 발 뻗고 자려면 지금은 이 우유가 필요해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입니다. 카페인 폭탄임을 알면서도 ‘스누피 우유’를 찾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심경이 담겨있네요. ‘슬리피노믹스’가 꿈틀대는 한국에서 트렌드에 맞지 않게 이 우유가 왜 인기를 끌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