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삼복입니다. 그늘에 가만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네요. 입추도 지났는데 여전히 밤바람은 후텁지근하고, 낮 볕은 뜨겁다 못해 따갑습니다. 오늘(16일)이 말복이라 하니, 삼계탕 먹고 처서 때까진 버텨봐야겠네요.
이처럼 한반도를 비롯해 전 세계가 찜통더위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지구 온난화 때문입니다. ‘꿈의 휴양지’ 몰디브는 수면 아래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터전을 잃어버린 북극곰은 굶어 죽고 있다고 하죠. 이번 리우올림픽 개막식에서 선수단을 에스코트하던 아이들 손에 왜 화분이 들려있었는지 이제 이해하셨나요?
하지만 이 같은 이상고온이 반가운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내외 변수에 꽁꽁 얼어붙은 돈 맥(脈)입니다. 에어컨을 사고, 백화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내수가 활기를 띠고 있거든요.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1로, 전월보다 2포인트 올랐는데요. 4월(101) 이후 3개월 만에 상승하며 다시 기준치를 넘어섰습니다.
우리와 기후가 비슷한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 총합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관측 사상 가장 더웠던 1994년, 일본의 국민총생산(GNP)은 오히려 0.6% 상승했습니다. 선선했던 1993년엔 GNP가 0.18% 감소했는데 말이죠.
꽁꽁 언 돈맥까지 녹이는 날씨인데, 기업들이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애그플레이션’ 위험을 방어하는 게 제1 전략이죠. ‘세계 기상시장 1위’ 미국부터 살펴볼까요? 세계 1위 곡물 기업 카길은 20여 년 전부터 날씨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위성을 띄워 전 세계 농작물을 실시간으로 촬영, 곡물 거래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는데요. 날씨로 버는 돈이 얼마나 되겠느냐고요? 연 매출이 150조원에 달합니다. 글로벌 비상장사 중 최대죠.
자동차 기업 GM은 53개국 글로벌 사업장의 기후변동 취약성을 수치화한 ‘취약성 지도’를 만들었고요. 화학기업 듀폰은 기후변화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최고경영자가 네트워크 최고경영자(CNO)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열공모드’만큼은 뜨겁습니다. 베이커리 ‘파리바게뜨’를 운영 중인 SPC그룹은 날씨와 제품판매량의 상관 관계를 나타내는 ‘날씨지수’를 점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데요. ‘날씨가 맑으면 샌드위치가 잘 팔리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피자 빵이 인기가 좋다’는 식이죠.
종가집 김치를 만드는 대상FNF도 날씨에 따라 배추 구입 물량을 결정하고요. ‘좋은데이’로 유명한 주류업체 무학은 기상청 장기예보를 활용, 계절별 판매 상품을 달리해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기온변화를 틈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며 공격 전략을 펼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한국이 뒤따라야 할 청사진이죠. 기상예측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웨더뉴스(일본)는 항공ㆍ육상 기상정보를 비롯해 지진 예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2010년 이후 매년 10%가 넘는 고성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2년 매출이 이미 1억6000만 달러(약 1749억6000만 원)를 넘어섰죠.
기상 관련 컨설팅 업체인 플랜어낼리틱스(미국)는 100여개 국가 1만개 이상의 지역의 방대한 날씨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자문하고 있고요. 스위스 재보험사인 스위스리는 인도와 아프리카 기후변동에 파생되는 보험 상품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를 만든 구글(미국) 역시 8년 전부터 빅데이터를 활용한 독감 예측 정보(Google flu trends)를 제공하고 있고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 아십니까? 이길 확률이 없다면 절대 돈을 걸지 않는 ‘투자의 귀재’죠. 그가 수년 전 2억2000만 달러(약 2404억6000만 원) 대박을 친 적이 있었는데요. 허리케인과 관련한 날씨파생상품 계약을 통해서였습니다. 날씨는 이제 단순한 정보를 넘어 돈을 버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지식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거죠. 입술에 붙은 밥풀마저 무겁게 하는 찜통더위, 꽁꽁 언 돈 맥을 녹이고 있다고 하니 이제 좀 견딜 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