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부동산 정책은
역대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서 규제와 부양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전두환·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은 확실하다 못해 화끈한 부양책에, 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장을 교란하는 투기 단속에 몰두했다. 어느 쪽이든 목표는 서민의 주거안정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임기 중 부동산 활성화 대책 발표는 무려 35차례였고,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2년여간 시행된 주택정책은 대략 24건이다. 어느 정부든 정책의 방향은 전 정부 정책의 효과에 따라 결정됐다. 정책은 늘 투기와 불안심리에 약발이 먹히지 않기 일쑤였고, 너무 많은 정책으로 정책 방향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충돌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충격파에 국내 부동산시장은 힘없이 붕괴되기도 했다. 안정된 시기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역대 정부의 부동산시장은 늘 흔들렸다. 부동산은 언제나 사회악 같은 부정적 개념으로 치부됐다.
◇침체로 시작해 투기판으로… 전두환(1980.9~1988.2) 정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불어닥친 투기바람을 잡기 위해 1967년 양도소득세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부동산투기 억제 특별조치법’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중동건설 특수로 대거 유입된 유동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투기는 서울 여의도와 강남지역 아파트로 옮겨붙었다. 정부는 다시 투기 억제대책을 꺼냈지만 공교롭게도 제2차 원유파동이 일어나 시장은 침체기에 들어선다.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부는 완화-규제-완화로 부동산 정책 방향을 계속 수정한다. 침체된 부동산시장에서 출발한 전두환 정부는 출범 초기 잇따라 부양카드를 꺼냈다. 신도시 개발의 근간이 된 ‘택지개발촉진법’도 제정했다. 2년간 계속된 부양에 시장은 뜨거워졌고, 정부는 부랴부랴 정책기조를 수정했다. 분양가 규제 △채권입찰제·불법전매금지 △종합토지세 신설 등이 연이어 나왔고 규제는 1985년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이후 국내경제 호황과 대통령 선거·올림픽 특수 등의 국가적 이슈와 맞물려 부동산시장은 날뛰기 시작한다.
◇규제에 올인… 노태우(1988~1993.2)·김영삼(1993~1998.2) 정부
노태우 정부는 전 정부의 임기 말 부양책으로 투기판이 된 부동산시장에 극약처방을 내리는 데 몰두했다.
출범 당해 부동산종합대책에는 △투기억제지역확대 △종합토지세 조기실시 △1가구 1주택 비과세요건 강화 등이 포함됐다. 1990년 상반기에도 규제방안은 3번 연속 발표됐다. 분당, 일산 등 214만 호의 주택이 단숨에 공급됐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988년 전년 대비 20% 상승했던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1989년 20.2%, 이듬해 32.3%까지 치솟았지만 1991년 -1.84%를 시작으로, -4.97%(1992년), -2.67%(1993년) 잇따라 하락했다. 앞서 3개년 동안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반전이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1995년 부동산실명제를 도입하는 등 규제 관리모드를 이어갔다. 그러나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부동산시장은 직격탄을 맞는다.
◇극명하게 갈린 정책… 김대중(1998~2003.2)·노무현(2003~2008.2) 정부
김대중 정부의 특징은 부동산을 투기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환위기로 추락한 부동산시장을 일으켜야 하는 특수성이 있었던 만큼 파격적인 승부수가 계속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분양가 자율화다. 역대 정부 중 전두환 정부 시절 단 한 번 등장해 1년 6개월 동안 시행된 이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도입 직전인 2007년까지 이어진다.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1997년에서 2006년까지 10년 동안 평당 479만 원에서 1064만 원으로 연평균 18.5%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인 12%를 우습게 넘어섰다. 전매제한 폐지, 청약요건 완화, 양도소득세, 취·등록세 감면, 대출 확대 등 전례없는 부양책이 등장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초 전국 아파트 값은 전년 대비 13.56% 폭락했다. 그러나 정부는 집권 마지막 해 시장 안정화로 새 방향을 모색했다. 각종 완화책에 버블폭탄이 발생해서다. 2002년 전국의 아파트 가격은 전년보다 22.8%나 급등했고, 서울 아파트 값은 30.1% 고공행진했다.
정부는 각종 부양책으로 IMF 조기졸업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과열은 막지 못했고, 이는 수습할 겨를도 없이 노무현 정부로 넘어간다. 전 정부의 대대적인 부양책이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 셈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투기판을 잠재우는 데 매진했던 것과 비슷하다.
참여정부는 강남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과열된 집값을 진정하기 위해 전 정부에서 도입하지 않았던 DTI(총부채상환비율)를 도입했고, LTV(주택담보대출비율)는 40%까지 낮췄다. 분양가자율화가 폐지됐고, 버블세븐 지정과 2기 신도시 조성, 보유세·6억 원 제한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강화, 분양가 전매제한 확대 등이 쏟아졌다.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살인적인 반시장정책이라는 저항에 직면했지만 결국 2007년 시장은 진정됐다. 2006년 24% 치솟았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다음 해 3.6%로 가라앉았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노무현 정부 정책은 반시장적이었으나 전 정부에서 이어진 정책으로 인한 과열로 불가피한 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정부 정책의 목표가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있는 만큼 서민들의 주거 부담을 낮추는 게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기 변수에 무색해진 부양책… 이명박(2008~2013.2) 정부
규제일로를 걸었던 전 정부로 인해 이 대통령은 가라앉은 시장을 일으켜야 했다. 재임이 시작된 2008년 한 해 6·11, 8·21, 9·1, 9·19, 10·21, 11·3 대책 등 모두 6개 부양책을 쏟아냈고, 이듬해 6개의 주요 대책을 더 쏟아부었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당시 한 보고서에서 “전 정부가 남겨놓은 반시장적 정책과 정서를 임기 후반에 철저히 떨쳐내야 한다”며 “IMF 위기 직후 정부가 시행한 시장친화적 주택정책 시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008년 전 세계로 확대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변수에 부딪혀 완화책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2009년까지 3% 안팎의 상승률을 보인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도 2010~2013년까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집값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 1년간 또다시 완화책을 쏟아부은 뒤에야 반등할 수 있었다.